`최저임금 대폭 인상` 포퓰리즘 공약에 고민
국내 대표적 전자부품 업체인 A사는 최근 태국 현지에 설비 투자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새로 들어설 태국 내각이 최저 임금을 40%나 대폭 올린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최저 임금 인상안이 현실화하면 태국은 생산 기지로서의 매력을 상실할 것으로 보고 있다. A사 사장은 “그동안 태국은 동남아에서도 상대적으로 임금 상승 요인이 매우 적은 지역이었다”면서 “최근 정국 불안정으로 동남아 지역 전반적으로 인건비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B사 태국 현지 법인은 지난해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하지만 새 내각이 최저 임금을 크게 인상할 경우 적자로 돌아설 것이 불 보듯 환한 상황이다. B사 관계자는 “태국 현지에 투자할 계획도 당분간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향후 구체적인 추이를 지켜본 뒤 투자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태국에 생산 거점을 구축한 국내 전자 업체들이 신임 총리 입각 소식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태국 조기 총선에서 승리한 제1야당 푸어타이당 잉락 친나왓 총리가 최저 임금을 40%나 끌어올리는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KOTRA에 따르면 태국에 진출한 국내 법인수는 120여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전자 업체들이 70개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태국은 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인근 동남아 지역중에서도 인건비 상승 부담이 적은 매력적인 곳으로 꼽혀왔다.
지난 2000년대 이후 동남아 국가들은 통상 연 1회 이상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추세다. 하지만 인상률은 대조적이다.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이 연간 15% 가량 최저임금을 올린 반면에 태국은 6~7%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더욱이 정국 불안 여파로 몸살을 앓았던 여타 지역들과 달리 노사 분규도 적은 편이었다. 국내 전자업체들에게 태국이 최저임금 쇼크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이유다. 태국 평균 임금은 직종별로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연 8000달러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잉락 공약대로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약 1만1200달러 수준으로 높아진다.
이에 따라 태국 현지에 진출한 대기업들도 비상이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악재를 만난 탓에 현지 생산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한 셈이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태국 법인 에어컨 생산물량을 대폭 늘렸다. 중국 내 최저임금이 급상승하면서 태국에서 에어컨 생산량을 늘려 리스크를 상쇄하겠다는 전략이었으나 암초를 만나게 됐다.
현지에 생산 법인을 둔 삼성전기 관계자도 “새 총리 당선으로 태국 내 사업 환경이 급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면서 “다만 아직 태국 정부 측에서 가시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