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건강한 통신 생태계 위해 새로운 사업자 절실"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한 이병기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60)의 “건강한 정보통신기술(ICT) 환경을 위해서는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필요하다”는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시장에 활력과 생기를 줄 수 있는 선순환 구조 생태계를 만드는 우선 순위로 새로운 사업자를 꼽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실제로 21일 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주관하는 ‘IT리더스포럼’ 초청연사로 나서 ‘스마트 강국으로 가는 교훈’이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ICT 시장구조가 공급자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새로운 환경에서는 진흥과 규제를 적절히 배합해 시장에 활력과 생기를 줄 수 있는 선순환 구조의 생태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미 3개 사업자 중심으로 고착화한 통신 시장의 폐해를 깨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자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1기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한 정보통신 분야의 대표적인 오피니언 리더. 퇴임 후 지난해부터 2년 임기로 아·태지역에서 처음으로 세계 최고학술단체인 ‘IEEE 컴삭(ComSoc)’ 회장으로 선출돼 우리나라 정보통신 위상 제고는 물론이고 세계 통신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이 교수는 ICT 시장은 ‘3차 디지털 대전’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0년 동안 정보통신는 법과 제도가 기술을 못 따라갈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1970년대는 디지털화가 본격화한 시기입니다. 이어 1980년대는 ISDN 등 망 고도화가 본격화됐습니다. 1990년대는 유선 시장이 회선에서 패킷으로 일대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이 교수는 이런 인식 배경으로 음성과 데이터의 통합을 축으로 컨버전스가 가속화했고 유선과 무선, 콘텐츠 각 분야에서 빅뱅이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1차 빅뱅은 유선이었습니다. 유선에서는 회선과 패킷의 싸움이었습니다. 회선 중심의 ATM 방식과 패킷 주도의 IP가 맞붙었습니다. 결국 IP패킷이 시장을 제패했습니다. 이어 무선에서는 GSM·CDMA·LTE 등이 주도하는 진영과 이더넷에서 와이파이, 모바일 와이맥스로 넘어가는 진영의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2차 디지털 대전입니다. 두 진영은 유선과 달리 공교롭게 ‘올(ALL) IP’로 수렴되면서 사실상 무승부로 상황이 종료되는 분위기입니다. 두 빅뱅 위에서 일어난 게 바로 ‘3차 디지털대전’입니다. 3차 디지털전쟁 핵심은 콘테츠입니다. 유무선 위에서 콘텐츠 컨버전스가 폭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를 가속화한 게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이 교수는 특히 3차 디지털 대전으로 통신사업자(텔코) 구도에서 생태계 중심으로 경쟁 양상이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글과 애플이 대표 사례입니다.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통신 시장은 사업자가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구글과 애플이 깃발을 들고 이를 중심으로 에코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구도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도 새로운 경쟁 환경에 빠르게 전환해야 합니다.”

 이 교수는 콘텐츠 융합 시대에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으며 콘텐츠 생태계를 제대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통신 분야에서 기본 인프라와 우수한 엔지니어를 갖춰 지금은 다소 뒤처지고 있지만 빠르게 추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부상하는 콘텐츠·소프트웨어를 육성하기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적극 나섰지만 실패한 데는 산업의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며 “제조업 마인드가 아닌 소프트웨어, 콘텐츠 마인드에서 접근할 때 과거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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