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는 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지금도 미래 유산들이 만들어져 가고 있으며 이것은 어떤 형식으로든 후세에 전달될 것이다. 원시인들은 생존을 위해 도구를 만들고 사람과 짐승의 형상으로 그림이나 조각을 만들었다. 그 이야기가 담긴 벽화들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자료로 남아있다. 현재의 이야기들은 미래에 어떤 형식으로 남아 과거로부터 이어져 간 지금의 우리들을 설명하게 될까.
디자이너들의 업무는 지난 10여 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아날로그적 방식이 순식간에 디지털화됐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던 스케치, 렌더링 같은 작업들은 컴퓨터로 표현됐다. 양산속도는 2배 이상 빨라졌고 3D 모델링, 가상 시뮬레이션, NC 목업 등 디자인을 표현하는 방식 또한 다채로워졌다. 하얀 종이 앞에 있던 디자이너들이 이제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잡고 있다.
하지만 결코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디자이너들이 직접 손으로 그린 ‘스케치’다. 디자이너의 머릿 속에 있는 그림들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해 내는 것으로 스케치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자신의 생동감 있는 아이디어를 손으로 그려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신선하게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이다. 손으로 그리는 그림의 아날로그적인 가치는 인간의 감정을 가장 인간답게 담아내는 데 있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적어도 10년은 뎃생 등 기초 표현 방식을 배우고 익혔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디지털화 된 시스템에 맞게 빠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데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효율을 위한 작업들은 디자인의 보조수단이 되어야 한다. 디자인은 창조적인 작업이고 그 창조적인 생각을 신선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적인 ‘기초’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최근 미술대학 커리큘럼에 스케치나 뎃생을 포함시키지 않는 추세는 염려스럽다.
디지털화 된 세상 속에서 변치 않는 아날로그적 가치를 지켜내는 것, 그것은 미래의 누군가에게 지금 우리들을 인간답게 설명해 낼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이 될 것이다.
고태경 대우일렉트로닉스 디자인연구소 책임연구원 tkko@dw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