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호위’하던 K7이 호랑이 그랜저의 재등장에 제왕의 자리를 내 주고, ‘절치부심’ 새 심장을 얹었다. 제왕과 똑같은 심장을. 걸음걸이도 제왕 흉내를 내도록 다듬었다. 비록 제왕의 상징이 된 어드밴스트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은 이식받지 못했지만 기아와 K7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K7을 보면 늘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 디자인이다. 한 배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등장한 K5·모닝, 곧 나올 프라이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데, 맏형 K7만 형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쩌겠는가. 사실 신형 그랜저도 디자인이 탁월하진 않은데, K7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 만약 K5 디자인이 K7의 것이었다면 그랜저가 지금의 쏘나타 처지가 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어쨌든 그랜저 등장 이전 한동안 준대형 시장을 주름잡았던 K7이 3.5 엔진 대신, 그랜저와 동일한 270마력, 31.6㎏·m를 발휘하는 3.0 GDI 엔진을 얹고, 내·외장을 새롭게 다듬어 ‘프레스티지 K7’으로 다시 태어났다.
외관에서는 그릴이 블랙 매시 타입으로 바뀌어 좀 더 정돈되고 강한 인상을 풍기고, 뒤 방향지시등에 LED를 적용하고, ‘3.0 GDI’라는 반짝이는 새 이름표를 달았다. 실내는 센터페이서 등에 적용됐던 블랙 하이그로시 대신 차분한 느낌의 블랙 우드 그레인을 적용했다.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던 실내가 차분해지면서 더 고급스러워졌고, 독특한 센터페이서도 디자인이 돋보이게 되었다. 실내 정숙성도 탁월하다. 운전석 시트에는 상반신을 마사지해 주는 기능을 추가했는데, 본격적인 마사지 기능으로 보긴 어렵고 공기주머니에 바람을 넣었다 뺐다 해 주는 정도다.
프레스티지 K7의 핵심은 작고 가벼워졌으면서 직분사 시스템을 더해 효율과 성능을 보강한 다운사이징3.0 GDI 엔진을 장착한 것이다. 기존 3.5 엔진보다는 출력이 20마력 낮고, 2.7보다는 무려 70마력이나 높아 효율적인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국산 승용차 중 가장 강력한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던 K7 3.5의 달리기 실력에는 미치지 못해 살짝 아쉬움이 남긴 한다. 3.0 GDI 엔진은 회전 상승이 매끄럽고, 고회전에서 음색도 상당히 카랑카랑하다. 여전히 270마력이라고 받아들이기엔 뭔가 아쉬운 파워는 엔진의 회전을 타이어까지 전달하는 과정 어디에선가 새어 나가는 듯하다.
서스펜션도 안정감이 뛰어났던 3.5와는 달리, 그랜저의 걸음걸이를 흉내내 많이 부드러워졌다. 일반 도로에서의 시승에서는 강한 바람으로 인해 고속 안정성이 많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진행된 렉서스 ES350과의 비교 시승에서는 상대적으로 ES를 앞서는 안정감을 보여 주어,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는 승차감으로 많이 개선하면서, 안정감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노력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ES의 타이어가 불리한 환경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핸디캡을 감안하더라도 K7의 안정감이 더 나았다.
지난 2010 F1 코리아 그랑프리 이후, 갖가지 진통으로 서킷 공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지만, 국제 규모의 서킷은 그 위용이 대단했다. 이 서킷에서 K7 3.0 GDI와 렉서스 ES350을 번갈아 시승하면서, 처음으로 이 서킷을 달려보는 설렘 반, 두 차종의 비교를 위한 집중 반으로 시승은 일찍 끝났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서킷과 월드 베스트셀러 ES350을 능가하는 매력적인 K7이 우리에게 있다는 감동은 일찍 사그라지지 않았다.
글·사진=박기돈 기자 nodikar@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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