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이슈]멀티 해저드(Multi Hazard)

 ‘복합 위험(Multi Hazard)’에 대비하라. 아직 국내 영어 사전에는 등장조차 하지 않은 이 신어(新語)를 위키언어낱말사전인 윅셔너리는 ‘여러 종류의 위험요소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자연재해, 재난, 사건·사고 등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리스크가 연쇄적으로 발생해 과거의 그것보다 광범위한 피해를 야기한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복합 위험이 지구촌을 흔든다= 이번 일본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은 이른바 ‘복합 위험’의 대표적 사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경찰청은 지난 22일 기준으로 피해지역에서 사망자는 9079명, 행방불명자는 1만2645명으로 인명피해가 2만1724명이라고 집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이번 피해를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이 최대 3000억달러(약 336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는 등 피해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내진설계 기술을 보유하는 등 그 어느 국가보다 자연재해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 일본에서 이 같은 피해가 발생한 것은 지진, 쓰나미, 방사능 유출 등이 연쇄적으로 발발하며 기존 체계로는 사실상 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백민호 강원대학교 공학대학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대지진은 2008년 중국 쓰촨 대지진, 2004년 남아시아 지진 해일과는 다른 복합적인 재난”이라며 “지진으로 건물이 붕괴한 후 해일이 덮치는 2차 피해에 이어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누출 등 인공시설물로 말미암은 3차 피해를 유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향후 지구촌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생할 재난 형태를 보여준 것으로 인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위험이 결합하면, 대응체계도 융합(Convergence)해야=기상정보를 중심으로 한 현 재난대응체계에서는 멀티 해저드의 예방도, 사후대처도 쉽지 않다. 그 때문에 IT와 재난예방정보를 결합한 ‘융합 방재’가 주목받고 있다. 지진, 해일, 홍수, 화재는 물론이고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광우병 파동, 조류독감 등 모든 위협을 동시에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다.

 김사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부연구위원은 “현대 사회에서의 재난은 불확실성(uncertainty), 상호작용성(interaction), 복잡성(complexity)이라는 특성을 갖춰 단일기관의 힘으로는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관련 기관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연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방재 선진국은 이 같은 변화를 사전에 간파해 범국가적인 융합 방재 체계 구현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9·11 이후 테러대책과 재난·재해 예방을 강화하고 있다. 미연방재난관리청, 주정부, 지방정부가 4단계의 재난관리체제를 이용해 조직체계를 구축 중이다. 단순히 대응, 복구로 끝내던 기존의 구태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다.

 연방위기관리청(FEMA)이 중심이 돼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면 연방 부처·주정부·지자체·민간 부문이 유기적으로 협력한다. 관계자 간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재해대책 포털은 물론이고 공간정보(GIS)를 기반으로 한 SW인 ‘HAZUS’도 개발해 적용 중이다.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즉각 피해규모를 산출하고, 피해 발생 전에 재난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도 가능하다. 민간 건축물에 더해 행정구역별 병원·소방서·경찰서 등 공공시설 DB, 도로·교량·가스·상하수도 정보, 시설물의 지반·지질특성 정보를 얹는다. 여기에 예상되는 지진을 시뮬레이션 해 △건물, 중요시설 등 1차적 피해 △화재, 잔해 및 위험물질 등 2차 피해 △사상자 예측, 재난구호소 현황 △지진 발생 후 장기적인 경제손실 등을 산출한다.

 영국은 광우병이나 구제역 등 긴급사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융합정보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프랑스는 원자력시설, 방사성 물질의 안전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대국민 커뮤니케이션에 적극 나서는 한편 유관기관과의 종합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복합 위험 대비는 사회안전망, 산업 육성 ‘두 마리 토끼’=반면에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위상에 비해 재난대응체계 구축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난상황을 감시할 수 있는 재난모니터링시스템은 실시간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갱신할 수 없는 구조다. 재난 대응에 필수인 재난통신망 사업은 사실상 표류 중이다. 기술방식도 제각각이라 재난이 발생했을 때 유기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방재를 단순한 리스크 관리가 아닌 미래 산업 육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방재는 전자태그, USN, BcN, CCTV, 센서, SW, 암호화기술, 그리드 컴퓨팅 등 다양한 기반 인프라 투자를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위치정보(GIS), 텔레매틱스, 지능형교통시스템(ITS), 도시통합관제기술, 홈네트워크 등 응용기술을 적용한다.

 그 때문에 복합 위험이 빈번할수록 이 같은 기술이 미래산업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능동형 전자태그 기술을 적용하는 소방용 핵심기술 시장은 오는 2018년까지 8억2600만달러 규모에 달한다.

 실시간 위치서비스는 오는 2017년에는 25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이 답보상태인 재난통신망은 미국에서는 주요한 시장의 한 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내년 미국 재난통신망 시장 규모가 141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분석했다.

 김계현 인하대 지리정보공학 교수는 “지역별 재해징후 모니터링, 과거 피해이력, 기상정보 등을 포함한 환경 요인, 피해 최소화 방안 등을 프로파일링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재해로 인한 국가적 피해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방재강국의 노하우를 수출해 산업발전도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진욱기자 cool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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