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업계가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가운데 현대ㆍ기아차가 올해 사업전략의 틀을 수정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나섰다. 중동ㆍ아프리카 등 신흥시장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현대가 강점을 가진 중ㆍ소형차 영업을 확대해 나가는 방향이다.
16일 현대ㆍ기아차는 현재 4곳의 컨설팅회사에 의뢰한 중동ㆍ아프리카 마케팅 보고서를 최대한 앞당겨 받기로 했다. 이들 컨설팅회사는 지난해부터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시노베이트와 함께 중동ㆍ아프리카 지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소비자 성향 분석을 통한 마케팅 방안 도출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프리카 전역과 터키를 포함한 중동 국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차량과 그 이유 등을 심층 분석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국가별 맞춤 마케팅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ㆍ중동 지역에 대한 마케팅 컨설팅 작업은 지난해 신설된 해외마케팅사업본부의 조원홍 본부장(전무)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컨설팅회사인 모니터그룹 코리아 대표였던 조 전무는 지난해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마케팅 부문을 강화할 때 발탁한 외부 핵심인재다.
아프리카 대륙의 경우 지난해 현대차 시장점유율은 11.9%로 12.5%를 차지한 일본 도요타에 이어 2위였다. 도요타 점유율은 지난 3년간 하락 추세인 반면 현대차는 상승세다. 올해 마케팅 결과에 따라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ㆍ기아차는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한 중ㆍ소형차 마케팅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와 리콜 사태를 마무리한 도요타는 올해 신흥시장 확대를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도요타는 까다로운 품질 기준도 버렸다. 선진국 기준이 아닌 신흥시장에 맞는 적정한 수준의 품질만 확보되면 차량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신흥시장 경쟁에서 꼭 필요한 원가경쟁력 확보로 이어진다.
도요타 전략도 대지진 여파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대부분 현지에서 생산하지만 핵심부품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에서 조달되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지진 이후 해외 공장의 연장근무를 전면 중단했다. 부품 공급 차질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중ㆍ소형차에서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예상했던 현대ㆍ기아차로서는 한숨을 돌리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적극적 마케팅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일본 대지진 여파에 따른 부품 공급 부족 사태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공급 체인이 가장 긴 산업이기 때문에 핵심부품 하나만 없어도 생산이 전면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일본 지진 때도 엔진용 피스톤 링을 만드는 리켄이라는 곳이 피해를 입으면서 도요타가 일주일가량 조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정확한 피해 현황 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공장 가동 이후의 여파를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 직접 피해를 입은 도요타 닛산 혼다뿐 아니라 진앙지와 떨어진 곳에 공장을 둔 스바루와 마쓰다 등도 당초 16일이던 조업 중단일을 20일까지 연장한 것도 부품 공급 우려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1% 미만의 부품만 일본에서 수입한다고 하지만 이 부품이 없으면 결국 99% 차를 만들어 놓고도 판매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도 이러한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생산이 판매를 못 따라가는 상황에서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판매가 크게 늘어나는 등의 반사이익은 없다고 본다. 대신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생길 수 있는 부품 공급 부족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매일경제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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