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유례없는 이상 한파로 인해 전력 수요가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전력 예비율이 비상 수준에 연일 근접하는 이 상황을 두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전력 시스템은 수요가 증가하면 그에 맞춰 공급을 증가시켜 왔다. 총 발전 공급량의 증가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동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고가의 가스 발전이나 유류 발전량도 비례해서 늘어났다. 하지만 발전소를 계속 건설할 수는 없다. 일단 발전소 건설비용이 수천억에서 수조원에 달하고 건설 기간도 최하 3년 이상 걸린다. 전력 수요가 너무 커져서 공급을 늘리는데 드는 한계 비용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번 사태와 같은 수요 급증을 공급 측면에서 예측하기 어렵다. 수요 증가에 따라 공급을 무조건 늘리는 것이 아니라 수요가 공급 상황에 맞춰서 응동하는 것이 지금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다.
비슷한 예를 쓰레기 처리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쓰레기 배출량이 급증해 매립지가 부족해지고 처리 비용이 급증하자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수거가 제도적으로 실시됐다. 이것은 공급(쓰레기 처리 서비스 공급자)측면의 무제한 증가를 중단하고 수요(쓰레기 처리 요구)의 능동적이고 분산된 응동을 이루게 한 매우 효과적인 해결 방안이다. 여기서의 문제 해결의 원천은 결코 기술의 발전이나 자원의 추가 투자가 아닌 수요자 각각에 분산돼 있는 응동력 이었다. 쓰레기 종량제라고 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이용해 잠재돼 있던 문제 해결 능력을 끌어 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현재의 전력 수급 문제, 더 나아가 에너지 문제의 좋은 해결책이 스마트그리드인 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수요에 따라 공급을 일방적으로 맞추는 것이 아니고 분산된 수요들이 어떠한 지표나 정보를 기준으로 스스로 판단해 적응하는 것이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분산된 수요의 규모는 작게는 가정부터 크게는 제철소까지 다양하며 그 응동은 수동적으로는 절전이나 미사용에서부터 능동적으로는 자가 발전이나 저장까지 다양 할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에서 필수 구성 요소는 응동을 이끌어 내는 체계(법·제도·규제등)와 판단 지표(가격 정보등) 그리고 공급 및 수요자의 판단 및 응동 능력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상호 작용해야만 전력 시스템의 원천적인 특성에 기인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다. 전력망에 IT를 도입한다고 자연히 스마트그리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IT는 이러한 시스템 운영을 자동화하고 빨리 처리 될 수 있게 하는 도구이지 근본 요소는 아니다. 사람의 지능으로 판단하고 응동을 해야 스마트그리드인 것이다.
그럼 현실적으로 우리가 무었을 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자. 먼저 지금의 난방 전력 수요 증가는 잘못된 전기 요금에 크게 기인한다. 원가에 못 미치는 산업용 전기요금 정상화 등 요금제 개편을 먼저 해야 한다.
저장이 되지 않는 전기의 특성상 시간에 따른 수급 조절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실시간 전력 가격이 정확히 산출돼야 한다. 그 실시간 전력 가격을 바탕으로 시간별 요금제나 피크 요금제와 같은 다양한 요금제를 만들어 수요 응동을 이끌어 낼수 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는 연료비 연동 가격제는 현재 기술과 제도하에서 고육지책임을 인정하지만 이것도 근본적으로는 공급 측에서의 설정값이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의 유기적인 변화를 따라 갈 수는 없다.
스마트그리드는 쓰레기 종량제처럼 쉽게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임이 자명하다. 기존 전력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요금제를 비롯한 새로운 체계를 도입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당분간은 새로운 체제로의 변화에 드는 비용보다 공급량 증가에 드는 비용이 더 적게 들 것 같다.
하지만 상온 핵융합과 같은 엄청난 기적이 나타나기 전까지 현존 기술의 한계 상황에서는 더 많은 석탄을 캐고 더 많은 기름을 뽑아내기 보다는 흩어져 있는 문제 해결 잠재력을 뽑아내는 노력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윤용태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 ytyoon@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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