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의 과도한 법 적용이 도마에 올랐다. 조달청이 최근 공정위 판결과 관련해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를 조달 단가 담합으로 제재할 방침이지만 과도하게 법을 적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조달청 ‘다수 공급자 계약제도(MAS)’에서는 가격 담합을 규제할 뚜렷한 법 조항이 없는데다 자칫 조달 제도 취지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전업체도 에어컨·TV 등 특정 품목 담합을 이유로 전체 조달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조달청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6일 삼성전자·LG전자·캐리어 등 가전업체 조달 납품 가격을 담합한 이유로 과징금 191억원을 부과한 후 후속 제재에 나설 방침이다. 조달청에 따르면 아예 모든 품목에 입찰 제한을 두는 ‘부정당업자’로 지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에서는 MAS에 납품하면서 이뤄진 물품 가격 담합을 담합 입찰로 봐야하는 지 관련 법규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현행 국가계약법(제76조 제1항)에서는 입찰 제한을 위한 부정당업자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미리 상의해 ‘입찰’에 참가해야 한다. 이에 반해 공공기관이 필요한 물품을 직접 사가는 온라인 거래장터인 MAS에서는 물품이 일정한 규격과 기준만 갖추면 납품이 가능해 조달청이 중간에서 업체를 대상으로 입찰에 붙일 여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가전업체는 “MAS에 납품하려고 가격을 서로 상의한 사실은 있지만 담합해 입찰을 하지는 않았다”며 조달청의 부정당업자 제재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공정거래위도 이들 가전업체에 과징금을 부과하면서도 종전과는 달리 조달청에 별도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요청하지 않았다. 국가계약법상 공정거래위가 조달청에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요청하면 입찰 여부와는 상관없이 제재가 가능하다. 조달청은 이에 자문 변호사 등을 통해 부랴부랴 법리 검토에 나섰지만 현행 국가계약법으로 제재가 가능한 지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설사 부정당업자로 제재하는 쪽으로 방침이 정해지더라도 해당 가전업체가 법적 소송을 검토한다는 뜻을 내비쳐 오히려 논란만 가중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가전업체 측은 “특정 품목으로 아예 조달 참여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더구나 국내 업체가 빠질 경우 외산업체끼리 경쟁이 될 수밖에 없는 데, 이는 국산 제품을 장려하는 조달 제도의 근본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달청 측은 “MAS 납품 형태가 전통적인 입찰 형식과는 달라 관련 제재 규정 적용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규정을 떠나 이들 업체의 가격담합은 공정거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어서 적절한 제재가 필요하다”며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삼성전자·LG전자·캐리어 등 가전업체는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각급학교 등 공공기관에 납품하기 위해 조달청과 ‘연간조달단가계약’을 맺으면서 조달 단가를 최소한 유지하거나 인상하기로 합의했다가 지난해 10월 공정위에 적발됐다. 2009년 이들 업체는 공공기관에 5729억원 가량의 에어컨을, 1340억원 규모의 TV를 각각 공공기관에 납품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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