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제조 기반 생산 역량을 극대화하는게 연구원의 가장 큰 임무입니다. 중소기업이 글로벌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업들의 충실한 조력자가 되겠습니다.”
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 원장(54)은 지난 연말 출연연 수장으로는 드물게 연임에 성공했다. 혁신적 조직관리와 폭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연구원의 주력 방향과 국가 산업성장 모델을 잘 연결시켰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 그가 임기 제2기를 열면서 ‘자율’과 ‘책임’ ‘소통’을 3대 경영 키워드로 들고 나섰다. 각 지역본부의 자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대신, 성과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 또 조직 내부는 물론 기업과 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통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비전을 찾겠다는 것이다.
차세대 통합 정보시스템 구축도 오는 3월 오픈 예정이다. 천안·인천·안산·광주·대구·부산 등 광역경제권에 배치한 지역본부와 본원을 상시 유기적으로 연계하려는 목적에서다.
나 원장은 취임 1기인 지난 3년 동안 산업계 지원이라는 설립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과 중소기업 지원 방식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고유 기능과 역할에 맞지 않는 분야를 과감하게 축소, 3대 중점 연구 영역에 집중하고 R&D와 기업지원 비율을 50대50으로 조정했다. 산업계, 특히 중소·중견기업 육성에 집중해 실용화 연구개발과 기업체 지원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주력한 것이다.
나 원장이 연임 후 지역본부 체제를 강화하는 것은 기업들을 보다 밀착 지원하면서 성과물을 구체화하자는 의지가 담겼다.
그는 “이제는 지금까지의 개선 노력들이 뚜렷한 성과 창출로 만들어져야 할 때”라며 “기술 주도형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중소·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맞춤형 밀착 지원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기술 지원 방식도 단순 기술지원보다는 종합 패키지 형태의 맞춤형 기술 솔루션(Technology Solution Provider)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생산기술 연구 역량을 강화하면서 개발된 기술의 현장 이전은 물론 시제품 제작에서부터 시험·분석·평가, 물류, 조립,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연계 지원을 통해 실용화 성공률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이들이 지역 특화산업 발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이끌겠다는 것이다.
-출연(연) 기관장으로서는 드물게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재임 직후 조직 개편을 단행했는데요.
△가장 큰 원칙이 자율 책임 경영제 도입입니다. R&D와 기업 지원을 양대 축으로 하는 업무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신설 전략사업본부는 지식경제부에서 하는 정책개발을 지원하고 과제를 수행하는 등 주요 R&D 기획과 관리를 담당합니다. 제도혁신팀을 신설해 기술 분야별·지역별 이해와 요구를 조율해 기관 전체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을 맡겼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성실하고 유능한 인사를 발탁해 본부장급의 평균 나이를 낮추는 대신 추진력은 높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창업을 했다가 돌아온 연구원에게 보직을 맡긴 것도 새로운 시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업 현실에 밝은 연구자에게 기술이전사업단 운영을 맡겨 중소기업들이 현장에서 필요로하는 것을 찾아 즉각 지원토록 하자는 취지입니다.
-최근 R&D 중점분야를 선정하셨는데.
△중소·중견기업 지원이라는 생기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관 본연의 임무와 맞지 않는 R&D 분야를 축소해 3대 중점 영역을 재선정했습니다. 주력산업의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뿌리산업 분야, 저탄소 녹색성장의 근간이 되는 청정생산시스템 분야,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융복생산기술 분야가 그것입니다. 중소기업들에게 가장 시급하면서도 공통적으로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겠습니다. 또 이 3대 분야에서도 가급적 산업계 전반에 파급 효과가 큰 과제에 우선 순위를 두고 연구원의 역량을 결집할 생각입니다. ‘사이버 엔지니어 U24`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미리 최적의 설계방안을 도출하는 부품설계기술입니다. 이 소프트웨어기술을 생산현장에 보급하는 한편 사이버설계센터 슈퍼컴퓨터에 접속하면 동시에 1000개 기업이 서로 구애받지 않으면서 자율적으로 부품 설계가 가능합니다.
-융합과 그린이 우리 산업의 큰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생기원은 우리 산업의 기초 체력을 강화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데 꼭 필요한 R&D에 주력합니다. 특히 IT·NT 등 신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전통 제조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새로운 시장을 열면서 실질적 성과 창출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태양전지 핵심부품인 실리콘 웨이퍼잉곳 제조기술, 스마트의류 제조 기술의 핵심인 통신 가능한 실, 즉 구리를 소재로 쓴 디지털사(絲), 고령화시대에 대비한 실버용 자동샤워시스템 개발 등 다양한 융합 신기술 분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청정지원센터를 통해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녹색기술 등에 대한 연구와 지원도 꾸준히 강조해 왔습니다.
-올해 새롭게 역량을 집중할 분야가 있다면.
△범 정부 차원의 융합산업촉진법에 발맞춰 다양한 융합 신기술 경쟁력을 보강하겠습니다. 지난해부터 강조해온 주조·금형·용접 등의 ‘뿌리산업’에 대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도 확대됩니다. 뿌리산업은 제조업 전반에 연결된 기반산업으로 신성장 산업 역시 이런 기반 기술의 경쟁력 확보 없이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힘듭니다.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가 될 수 있는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도 전문센터 설립 등 대응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동반성장’을 위한 생산기술 협력도 중요해 보입니다.
△생기원은 최근 LG전자가 HK하이텍·금강코엔·한라케스트 등 소재 협력기업들과 상생 동반성장을 위한 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연구원이 개발한 에코 마그네슘 합금기술을 협력사들에게 지원하고 LG전자와 협력사들이 탄소배출권 사업에 공동 참여토록 한 것입니다. 이처럼 생기원이 개발한 친환경 기술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에 적극 활용될 수 있습니다. 중소·중견기업 지원 임무는 물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중박스>6대 뿌리 산업 경쟁력 확보로 신성장동략을 잡자
‘6대 뿌리산업’은 주조와 금형·용접·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 등 소재를 부품으로, 또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기초 공정산업을 말한다. 겉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최종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근간이 되는 대표적인 기반 산업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3D 업종의 대명사처럼 불리며 사양산업으로 인식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또 첨단 디지털 산업에 비해 그 중요성이 평가절하된 측면도 있어 왔다.
뿌리산업은 사실상 전 산업 분야와 연결된 기본 기술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기술 축적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현장에서의 노하우 확보가 필수적 분야라는 특징도 있다.
지식경제부는 이 같은 뿌리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여보자는 취지에서 범 정부 차원의 산업 육성 방안을 지난해 발표했다. 뿌리산업 기술의 첨단화와 융복합화를 통해 신성장동력 산업까지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수요산업의 고도화와 첨단화에 따라 청정에너지 분야 뿌리산업, 초정밀 분야 뿌리산업 등 고부가 뿌리산업의 육성도 필요한 대목으로 꼽힌다.
생산기술연구원은 정부 차원의 뿌리산업 육성 핵심기관 역할을 맡고 있다. 연구원 내 뿌리산업기술연구본부를 신설했고 지역센터에 ‘뿌리산업 기술지원단’도 가동키로 했다. 생기원은 각 지방 중기청, 대학 등을 연계해 권역별 ‘뿌리산업 IT융합 지원단’도 가동하기 시작했다.
생기원은 제조공정 전주기에 걸쳐 IT융합기술을 적용해 뿌리산업을 친환경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꿔나갈 방침이다. 지난해 10월 대구·경북권에 처음 설치된 IT융합지원단은 올해 경인·중부권, 호남·광주권, 부산·동남권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나경환 원장은 “뿌리산업은 부품소재를 만드는 핵심 공정기술이면서, 주력산업의 최종 품질을 결정하는 기반 기술”이라며 “뿌리산업추진단을 선임본부장 직속으로 배치해 혁신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박스>연구개발, 과기정책을 모두 경험한 수장-나경환
나경환 생산기술연구원장은 직접 연구개발에도 참여했고 국가 공무원으로 국가 과학기술 정책도 수립해본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기술고시 15회로 지난 1982년 과학기술처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고, 이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설립준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가 지난 89년 생기원 설립과 함께 신생 연구기관인 생기원을 선택한 이력도 이채롭다.
생기원 선임연구본부장까지 거친 그는 다시 2004년부터 과학기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 국장급으로 활동하면서 국가 과학기술 큰 틀을 조율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나 원장은 이후 ‘고향’인 생기원의 원장으로 컴백했고, 내부 인사 출신으로는 처음 8대 원장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말에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연임에까지 성공했다.
오랜 연구 활동에다 국가 정책 수립 경험, 기업 현장과도 친밀해 생산기술연구원장으로는 최적임자라는 평이 많다. 정부는 물론 과학기술계, 연구자들과의 폭넓은 교감도 그의 강점으로 꼽힌다.
나 원장은 “연구원의 R&D 역량 강화는 국가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체의 생산혁신을 이끌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연구개발 자체는 물론 성과물을 기업체에 이전하고 잘 사업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생기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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