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나들이가 드물었던 시절을 산 이들이라면 영화 상영전에 방영됐던 ‘대한늬우스’를 기억할 것이다. 흑백화면으로만 기억되는 대한늬우스가 1994년 12월 31일까지 지속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한늬우스는 1945년 해방 이후에 조선시보로 시작해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전진보를 거쳐 1953년부터 대한늬우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0년 잠시 3월 카메라 순보로 바뀌었다가 이듬해 6월부터 다시 원래의 이름으로 돌아와. 1994년 12월 31일 2040호를 끝으로 종영한 대한뉴스.
뉴스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전국 모든 극장에서 영화 상영 직전 애국가와 함께 상영된 대한늬우스는 사람들에게 정부의 정책이나 나라 안팎의 소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체였다.
정부 주관으로 매주 제작돼 일방적으로 소식을 전하는 채널이긴 했지만 영화와 함께 대한늬우스를 보고 즐기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추억거리로 남았다.
그랬기에 1994년 대한늬우스의 마지막 상영 소식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정부 역시 대한늬우스가 아니더라도 KTV를 통해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방안을 도입했고, 이후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정부의 홍보 시책도 양방향으로 바뀌는 듯했다.
2009년 네티즌 사이에 논란을 일으키며 대한늬우스는 부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정부 정책을 국민들이 쉽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코믹 버전의 대한늬우스를 새롭게 만들어 6월 25일부터 한 달간 전국 52개 극장 190여 상영관에서 선보였다.
첫 번째 홍보 주제로 선택된 것은 ‘4대 강 살리기’였다. 당시 최고 인기코너였던 KBS 개그콘서트 ‘대화가 필요해’ 형식을 도입해 4대 강 정책의 필요성을 대화체 형식으로 1분 30초간 코믹하게 홍보했다.
하지만 네티즌의 반응은 차가웠다. 15년 전에 폐지된 대한늬우스 부활 소식에 누리꾼들은 ‘시계가 거꾸로 간다’는 비판과 함께 소통을 피하고 일방적 정책홍보만 하려는 태도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심지어 내용 중 일부가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아 불편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대한늬우스가 도마에 오르자 결국 출연한 배우가 사과를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대한늬우스가 마지막 방송을 했던 그때에서 멈췄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대한늬우스라는 이름이 이토록 불편하게 기억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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