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댔다. 92쪽부터다. ‘이 사람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하고 고개가 갸울어졌는데, 이때부터 물음표가 허리를 쭉 폈고 내내 웃었다.
“(뭔가 메모를 하다가 깜짝 놀라며) 아! 예! 어, 저는 훌라트베리, 아니, 죄송합니다, 코츠 사무총장님이 말씀하신 ‘달리 생각하는 전문가도 있다’는 얘기에 답변을 하고 싶은데요. 우리의 사고방식에 직간접적으로 정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찰스 다윈입니다.”
압권! 웃음이 절로 되바라졌다. “다윈이 이미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자연계를 관찰해보면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고 말이죠. 그게 뭐죠? 그렇습니다, 바로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겁니다”라는 훌라트베리씨. 그의 몇 마디 말로야 그리 크게 웃을 일이 아닐 것이나 생뚱맞은 훌라트베리씨에게 당한 CNBC의 앞뒤 사정을 알면? 정말 배를 그러안고 넘어질 정도로 재미있다.
속내는 이렇다. 2001년 7월 19일,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릴 선진8개국(G8)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경제 전문 방송 CNBC가 미국 스튜디오에 버논 앨리스 액센츄어 회장과 배리 코츠 세계개발운동 사무총장을 모셨다. CNBC 파리 지사 스튜디오에 나온 그랜위스 훌라트베리 세계무역기구(WTO) 대변인도 연결했다. 생방송이었다. 니겔 로버츠(사회자)를 포함한 네 조각 TV 화면의 한 곳을 차지한 훌라트베리씨는 G8 정상의 거룩한(?) 세계 무역 문제와 빈곤 해결 회담 내용을 ‘찰스 다윈’을 내세워 천연덕스럽게 비웃었다. 코츠 세계개발운동 사무총장은 훌라트베리의 이런저런 엉뚱한 주장에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88쪽)’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실은 훌라트베리가 WTO의 대변인도 아니었던 터라 온 세상에 장난을 친 것이었다.
허무! 되바라졌던 웃음은 어이없는 헛웃음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훌라트베리가 어이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대하는 세상이 한심했다. 특히 훌라트베리에서 행크 하디 운루 박사로 변신한 지은이가 핀란드 탐페레공과대학에 나타나 노동자 원격 감시용 ‘경영자 여가복’을 펼치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장면(126쪽)은 기막히다. 또 경영자의 고민을 해결해주고자 WTO가 제시했다는 그 ‘경영자 여가복’에 달린 ‘종업원 투시보조기’를 취재하러 운루 박사에게 득달한 몇몇 언론(140쪽)이란…. 정말 내로라하는 150여 기업인, 학자, 고위 공직자의 눈에는 남성 성기를 닮은 그 ‘종업원 투시보조기’가 그저 보조기로만 보였던 것인가. 그들이, 또 세상이 그렇게 허술하다면, 점점 두려워진다. 앞으로 그들을, 또 그들이 하는 일을 액면 그대로 믿어주기가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희망! 햄버거를 던지는 젊은이(188쪽)가 있어서다. 2002년 3월 이번엔 키닝스렁 스프라트 박사가 되어 뉴욕주립대 강의실에 나타난 지은이의 얼굴을 향해 ‘선진국 소비자의 똥을 재활용한 속(패티)으로 만든 햄버거’를 거칠게 내던진 몇몇 학생으로부터 얻는 안도다. 스프라트 박사는 똥을 재활용한 햄버거를 제3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쓸 것이라고, 그게 WTO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결론은? ‘WTO를 KO시키자’는 손팻말이었다.
앤디 비클바움·마이크 버나노·밥 스펀크마이어 지음. 정인환 옮김. 빨간머리 펴냄.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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