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승의 철도 르네상스]공존 공영의 통로, 철도

21세기 철도는 `제국의 길`이 아닌 `생존의 길`이요, `공존 공영의 통로`다.

19세기 말 철도는 근대화의 상징이며, 동시에 침략과 수탈의 첨병 역할을 했다. 1903년 영국의 언론인이자 기행문학가였던 조지 린치는 이제 막 완공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동북아와 시베리아를 여행했다. 그리고 그의 저서 `제국의 통로`에서 `철도는 제국의 길`로 규정했다. `철도는 피를 흘리지 않는, 은근하면서도 새로운 침략의 방식이며 오늘은 물론 내일도 그럴 것` 이라고 단언했다.

러일전쟁 직전 만주와 시베리아를 둘러싼 열강들의 치열한 각축과 근대화의 물결이 대서사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문명과 야만, 무력과 정치력으로 작동하는 세계 패권체제의 본질을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후 일본은 러일전쟁의 승리로 한국을 식민지화했다.

하지만 조지린치의 예언은 천만다행으로 빗나갔다. 이제 한국은 세계 톱10 수출국이다. 21세기 철도는 `제국의 길`이 아닌 `생존의 길`이요, `상생과 공동번영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 1951년 유럽 국가들은 전쟁재발 방지를 위해 EU의 전신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결성했고, 1953년 유럽교통장관회의체(ECMT)를 구성해 철도가 EU의 경제 · 사회 · 문화를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한다. 또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는 빈곤퇴치, 낙후지역의 경제 활성화, 수송체계의 세계화 및 통합화를 위해 지역 간 인프라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아시아 횡단철도사업이 진행 되고 있으며, 북부노선(Nothern Corridor:중국 · 카자흐스탄 · 몽골 · 러시아 · 한반도), 남부노선(Southern Corridor:중국 남부지방 · 미얀마 · 방글라데시 · 인도 · 파키스탄 · 이란 · 스리랑카 · 터키), 아세안(ASEAN:아세안 국가 및 인도차이나 지역국가), 남북노선(North-South Corridor:북유럽 · 러시아 · 중앙아시아 · 페르시안 걸프지역)으로 구분돼 추진 중이다.

21세기 세계는 거대지역권을 중심으로 대도시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 거대지역권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거대지역권 내 산업 간 유기적인 연계, 시너지 창출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초고속교통망 연결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초고속철도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여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유럽은 EU경제권 강화를 위해 5800㎞의 고속철도망을 2020년까지 2만1000㎞로 확충할 계획이다. 얼마 전 우리정부도 `KTX 고속철도망 구축전략`에서 전국 주요 거점을 일상 통근시간대인 1시간 30분대로 연결, 하나의 도시권으로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 플로리다 등 13개 노선 1만3760㎞에 고속철도 건설 계획을 발표했는데, 캘리포니아주는 연방정부의 고속철도 지원 계획에 따라 새크라멘토와 LA를 거쳐 샌디에이고에 이르는 고속철도 1250㎞ 구간을 단계적으로 건설할 예정이다. 일본도 운영 중인 신칸센 2387㎞ 이외에 1173㎞를 추가로 건설하고, 도쿄~오사카 간에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투입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러시아 철도교통 2030`을 발표하고, 모스크바 · 노보시비리스크 · 블라디보스톡 3대 거점을 중심으로 고속철도를 건설할 계획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위하여 2조6000억달러의 세계 최고 외환보유고를 기반으로 초고속철도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는 `제국의 길` 아닌 `생존의 길`로 철길을 선택하고, 철도 르네상스에 열광하고 있다. 미래의 길은 `제국의 통로`가 아닌 평화를 지향하는 `공존공영의 통로`여야 한다.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기획부장 hsna@kr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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