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중립성은 `망사업자는 모든 콘텐츠를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소비자가 이용하는 인터넷 콘텐츠의 내용을 감시하거나 차등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 망 중립성의 기본 전제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콘텐츠사업자(CP)들은 유선의 경우 포털, 무선인 경우 스마트폰 앱스토어 등을 통해 서비스를 사용자에게 배포한다.
구글과 애플, 포털업체들은 이제 망사용자일 뿐 아니라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기기 등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소유했다.
따라서 이들도 정보 차별 금지, 투명한 네트워크 관리 등 인터넷 개방성을 전제로 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정작 자사의 철저한 규정을 내세워 콘텐츠를 차별하고 닫힌 구조에 정착하고 있다.
◇애플의 애플리케이션 차별=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의 앱스토어 운영이다. 애플은 서비스 초기 앱스토어 등록이 자유롭다는 평을 받았지만 자사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 애플리케이션의 등록을 제외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지난 5월 우리나라의 음원 서비스업체인 벅스, 소리바다, 엠넷의 애플리케이션이 애플 앱스토어에서 삭제된 바 있다. 당시 해당 회사들은 국내 회사의 휴대폰 결제시스템을 도입해 서비스 중이었다.
하지만 애플이 이 결제시스템을 문제 삼으며 애플 앱스토어에서 애플리케이션을 갑자기 삭제했다. 결국 이 회사들은 신용카드 결제 방식으로 애플리케이션을 바꿔 재심의를 요청, 결국 승인을 받아 다시 애플리케이션을 등록해야 했다.
비록 기존 망사업자들의 닫힌 구조와 형식은 다르지만 플랫폼을 이용한 콘텐츠 제약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규제 당사자가 이동통신사가 아닌 단말기 제조사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이 같은 애플의 심의와 애플리케이션 삭제가 지속될 경우 무선 부문에서의 폐쇄적인 사업 및 서비스 운영이 지속되어 CP 및 이용자들의 사용을 제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애플은 동영상 구동 소프트웨어인 어도비 플래시에 대한 차별도 공언한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는 어도비의 플래시를 적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공개적인 논쟁을 해왔다.
그는 애플은 모바일기기인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플래시를 채택하지 않은 이유를 애플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공개한 바 있다.
잡스는 “웹상의 동영상 중 75%가량이 플래시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어도비는 주장하지만 거의 모든 웹 동영상은 플래시가 아니더라도 새 포맷에 의해 얼마든지 가능하다”면서 “플래시는 특히 모바일기기에서의 성능이 떨어지고 배터리 수명을 고갈시키고 있어 터치 방식의 애플 제품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용자들 중 일부는 애플의 휴대기기에서 플래시 구동에 제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또 다른 일부는 플래시를 적용한 웹사이트에 연결했을 때 나타나는 오류나 모바일 인터넷에서의 빈 상자가 나타나는 상황에 대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구글 인증 통한 기기 차별=폐쇄적인 운영은 1억대 이상의 단일 OS의 모바일기기를 판매한 애플만 해당되는 특수한 상황만도 아니다.
구글은 인증을 통해 안드로이드 기기들의 적자와 서자 나아가 사생아까지 구분한다. 구글 본사는 안드로이드 단말기의 기기 승인 과정에서 휴대폰업체에 호환성 인증 테스트를 진행한다.
지난 4월 이 과정에서 미국 구글 본사의 승인이 지체되면서 LG유플러스의 `옵티머스Q` 출시가 늦어졌다.
구글의 검수 절차를 `호환성 테스트(CTS:Compatibility Test Suite)`라고 부른다. 안드로이드마켓을 사용하려면 이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특히 안드로이드 OS 버전으로 나누면 1.6버전까지는 `안드로이드폰`만 인정받을 수 있지만, 2.1버전부터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인터넷디바이스(MID)`도 승인받아야 한다. 이를 거치지 않으면 무단으로 안드로이드폰이라는 명칭과 안드로이드마켓을 쓰는 셈이다.
또 구글의 적자로서 마케팅까지 하려면 한 가지 절차가 더 필요하다. 위드 구글(with Google)이라는 마크 인증이다. 이 인증은 의무는 아니지만 구글의 모바일 서비스를 구글이 원하는 수준만큼 구현한 단말기를 뜻한다. 검색뿐만 아니라 지메일(이메일), 구글맵(지도), 구글토크(메신저) 등을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든 단말기를 구글은 이 인증을 통해 차등한다.
◇네이버 검색=앱스토어와 구글의 기기 인증이 무선에만 해당하는 차별이라면 유선에서도 콘텐츠를 차별하는 검색이 존재해왔다.
인기 콘텐츠를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것이 네이버 검색의 장점이다. 하지만 인기순에 대한 논의는 빼더라도 광고료를 주고 유료 사이트로 등록한 경우 검색 시 웹사이트를 상위에 노출시킨다. 광고에 따른 콘텐츠 줄 세우기는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자체 데이터베이스(DB)를 통해 콘텐츠에 빠르게 접근하게 하는 것도 차별적 소지가 있다.
뉴스캐스트를 시작하면서 검색 결과에 대한 외부 연결을 늘렸지만 여전히 국내 대부분의 언론사로부터 뉴스를 받아 자체 DB에 저장하고 사용자는 외부 사이트로 나가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뉴스에 접근할 수 있다.
또 올해 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 네이버 사이트에서는 다시 언론사들의 모바일 뉴스를 편집하는 방식으로 서비스한다. 이는 기존의 인터넷에서 온라인 뉴스를 사들여 유통하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이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일간지 12개사가 포함돼 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는 공동 뉴스포털인 `온뉴스`를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용으로 제작해 유료화를 시도하고 있다. 네이버는 외부 사이트 자료를 네이버 블로그로 퍼나르기 시작하면 원본이 걸린 사이트의 순방문자(UV)나 페이지뷰(PV)는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이는 흔히 이마트 때문에 쓰러져가는 동네 구멍가게에 비유된다.
◇콘텐츠 차별 비판받아야 하나. 소비자 선택, 시장 논리에 맡겨야=김상헌 NHN 대표는 올 초 안드로이드폰이라도 네이버 검색엔진을 탑재할 수 있는 경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김 사장은 “모토로라가 중국에서는 안드로이드용 기본 검색엔진으로 구글 대신 중국 검색인 바이두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면서 “네이버가 안드로이드폰에 기본으로 탑재되는지와 애플리케이션으로 들어가는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결국 네이버조차 해외 플랫폼에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 탑재 차별에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유무선 인터넷 환경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를 가진 망사업자뿐 아니라 생태계에서 플랫폼 역할을 하는 제조사, 포털 등도 모두 콘텐츠를 차별할 수 있는 권한을 쥔다.
하지만 휴대폰 제조사가 어떤 검색을 탑재하는지, 제조사가 어떤 OS를 채택하고 어떤 수준의 안드로이드 기기로 만들 것인지는 결국 소비자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른 기업의 선택은 생존 전략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김성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융합서비스 전략연구팀장은 “유무선 인터넷 환경에서 생태계를 구축하는 역할은 이제 망사업자뿐 아니라 제조사, 포털 등과 동일한 입장”이라며 “유독 망사업자만에만 중립과 무한한 개방을 요구하는 것은 현재 상황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동인기자 di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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