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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화산업 중심지 미국 할리우드가 세계로 눈을 돌렸다. 할리우드가 큰돈을 들여 미국형 블록버스터를 만들면, 세계가 관람하는 시대가 저물고 `국제적으로 통해야 한다`는 새로운 영화 제작 기준이 섰다.
2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영화감독 아담 맥케이는 올해 자신의 2004년 성공작 `앵커맨` 속편을 만들려 했으나 제작사 파라마운트픽처스의 반대에 부딪혔다.
파라마운트픽처스는 지난 2004년 `앵커맨`에 2000만달러를 들여 9000만달러를 벌어들였으나 해외 수익이 500만달러에 불과했던 점에 주목했다. 미국에서나 통할 코미디 영화의 속편에 돈을 댈 이유가 없다는 게 제작사 측 판단이었다.
맥케이 감독은 “결국 (영화) 사업의 경제학이 바뀌었다. 세계적으로 통해야 한다는 압박이 많은데, 이에 저항할 수 없게 됐다”고 푸념했다.
10년 전에만 해도 할리우드 영화사 경영자에게 해외 수익은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외 수익이 전체 영화 매출의 68%인 약 320억달러에 이르렀다. 스크린다이제스트시네마인텔리전스서비스에 따르면 해외 수익이 10년 전보다 대략 58%나 치솟았다.
시장 상황이 바뀌자 할리우드 영화계의 해외 입맛 맞추기가 시작됐다. 세계에 통할 줄거리와 함께 외국인 배우를 캐스팅했다. 예를 들어 `지 아이 조`는 전형적인 미국형 블록버스터였던 애초 대본을 세계 관객을 유인하기 위한 형태로 다시 썼다. 또 한국 인기 배우 이병헌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배우 아놀드 보슬 루에게 중요 배역을 맡겼다.
결국 `지 아이 조`는 전체 수익 3억200만달러 가운데 해외 수익이 1억5200만달러를 기록해 미국 내 수익보다 많았다. 한국에서만 16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미 영화업계는 이미 미국식 농담과 재미에 치중하는 할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 영화 제작예산을 삭감했다. 몇몇 할리우드 영화사는 아예 한국이나 브라질과 같은 해외 영화시장을 겨냥한 영화의 자금조달, 제작(프로듀싱), 판촉(마케팅) 체계를 가동했다.
중국도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시장이다. 중국 정부는 5000개에 불과한 영화상영관(스크린) 수를 향후 5년간 3만5000개로 늘리기로 했다. 또 올해 `아바타`로부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르기까지 몇몇 할리우드 영화가 중국 관객에게 인기를 끌면서 중국 내 영화 매출이 86%나 치솟아 시선을 모았다.
20세기폭스의 베테랑 영화 경영자 샌포드 패니치는 아예 해외 영화 제작에 나섰다. 지난 2008년 야심작 `점퍼`가 한국시장에서 현지 영화 `추격자`에 참패한 게 계기였다. 패니치는 `추격자`를 만든 나승진 감독의 새 영화 `황해`에 투자했다. 900만달러 이하가 소요될 `황해`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개봉할 예정이다. 20세기폭스는 올해 `황해`를 비롯한 15개 해외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다. 지난해보다 투자 규모를 2배 늘렸으며, 첫 중국어 영화 `핫 서머 데이스(Hot Summer Days)`도 포함됐다.
놉 무어 파라마운트픽처스 부회장은 “국제적으로 흥행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게 오늘날 영화로 수익을 창출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월트디즈니모션픽처스그룹 대표였던 마크 조라디도 “세계적인 인기를 노리지 않은 채 1억5000만달러~2000만달러나 들어가는 대작을 만들 수 있는 영화사는 없다”며 “이제 국내(미국)산 영화로는 절대 수익을 낼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