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국내 민간기업 A사는 미국 석유개발 기업인 B사를 9000만달러에 인수했다. 국내 민간 기업이 미국 석유개발 기업을 인수한 최초의 사례다. 지식경제부가 직접 나서 알렸을 정도로 해외자원개발분야에서는 신선한 ‘사건’이었다. 자원개발에 전문적인 역량을 갖추지 않았을 것 같은 민간 기업이 어떻게 미국 석유개발 기업을 인수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인수가격은 적정했을까. 해답은 ‘해외자원개발 서비스 산업’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에 숨어있다.
◇해외자산 인수의 산파, 서비스 기업=A사가 인수한 B사는 미국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주에 1900만배럴 규모의 60여개 석유·가스 생산광구를 보유하고 있다. 생산량은 일산 4800배럴 규모로 전량을 미국 전역에 판매하고 있다.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됐던 B사가 자산 시장에 매물로 등장한 것은 이 회사의 지분의 100%를 보유하고 있던 모기업의 자금난 때문이었다.
일단 B사의 매각 소식이 전해지자 자산 매각을 중개하는 기업들은 각국의 기업이나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B사의 인수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전문 에너지자원서비스기업인 C사가 A사와 B사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C사는 당시 B사의 매장량평가 보고서를 검토하고 국제유가 등 다양한 요소를 바탕으로 리스크를 부각시켜 인수 가격을 9000만달러로 낮추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B사가 매물로 나온 지난해 초 인수가격은 약 2억4000만달러였고 2004년 B사의 인수 가격은 3억5000만달러였다.
국제유가가 낮았고 세계적인 금융위기 때문에 인수전에 뛰어든 기업들이 많지 않았던 것도 이유지만 중개기업 또한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로 우리나라기업이 가격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도록 도왔다. 특히 C사는 이외에도 계약에 필요한 법률적인 자문까지도 도맡아 처리했다.
◇새롭게 떠오르는 시장, 자원개발 서비스 산업=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07년부터 해외석유·가스분야의 개발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정부 또한 해외자원개발을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앞으로 이 분야로 유입될 투자금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3년간 해외석유개발투자금액을 살펴보면 2007년에 25억5000만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2008년에는 40억달러로 늘어났다. 2009년에는 52억까지 늘어났으며 정부 추산에 따르면 올해는 민·관분야에서 약 120억달러의 투자가 예상된다. 해외 광구나 외국 기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통상 총 투자비 중 5% 수준의 서비스 사업비가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약 6억달러가 서비스 사업분야로 흘러들어간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실제로 1억달러 규모의 미국 생산유전을 매입할 경우 매장량 평가 및 환경조사에 약 50만달러, 파이낸싱·회계·법률 자문료에 250만달러, 광구매입중개 수수료로 약 200만달러 정도가 지출된다.
문제는 해외자원 관련 자산을 인수하는 투자금액이 늘어나면서 기술성 및 사업성 평가, 계약 자문 등 컨설팅 사업비가 크게 늘어났지만 이 비용이 고스란히 해외 서비스기업의 차지가 되는 데 있다.
2008년도의 사례를 보면 당시 해외 석유·가스전을 인수한 국내기업의 대부분이 매장량평가, 금융·회계·법률 등 서비스 부문의 자문을 메릴린치·매킨지·톰슨 앤 나이트 같은 외국계 회사에 의뢰했다.
최근 국내의 대형 회계법인 및 로펌에서 일부 투자 사업에 대해 회계 및 법률분야에 자문사로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상당한 부분을 해외 서비스기업이 맡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에너지공기업과 대기업이 석유·가스 사업자와 직접 접촉해 프로젝트를 발굴하지 못하고 미국의 투자은행(IB)나 개인브로커에 의존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의 투자환경에 맞는 맞춤형 매물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순발력이 떨어져 선별적으로 매물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중요 투자 정보가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커지고 유전개발의 기술자립과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자원개발 서비스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자원개발 서비스산업의 육성은 선택이 아니라 이제 필수다. 자원개발 서비스 산업은 앞의 사례처럼 자산 매각시 중개부문뿐만 아니라 시추 등 전문적인 기술을 제공하는 영역까지 방대한 부분에 걸쳐 있다.
석유개발분야를 예로 들면 광구확보탐사·시추유전 평가개발·생산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기술제공 △사업평가 △사업운영 분야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있다.
기술제공분야는 주로 탐사광구 개발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다. 탐사·시추·생산·자원처리·장비임대·장비생산 등의 주요 사업영역이다.
사업평가부분에서는 사업평가 및 투자자문 등 전문적인 평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매장량 평가는 물론 사업성 평가·금융자문·법률자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업운영분야에는 주로 현지에서 광구를 직접 운영하는 기술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있다. 엑손모빌이나 세브론 등 세계적인 대형 석유기업들도 각 특정분야의 사업은 서비스 기업에 맡기고 있다. 자원개발의 모든 부문에서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원개발분야마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경쟁을 펼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리다.
지난 4월까지 국내에 등록된 자원개발 서비스 기업은 4곳이다. 대부분 업력이 짧고 제한적인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석유·가스 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과 일부 대기업은 자체 전문 인력을 확보해 일부 기술성 및 사업성 평가업무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전문적인 평가는 아직 어려운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우리나라 같은 후발주자들은 우선 기본적인 서비스분야부터 육성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수한 국내 금융·투자 자문 역량을 자원분야에 접목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해외 석유개발 투자 관련 서비스용역은 일정부분 국내기업에 발주하게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이 동북아시아 국가의 석유개발투자 관련 서비스 용역을 수주해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는 방안 또한 필요하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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