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왓 위민 원트’의 주인공 닉은 어느날 여성들의 마음을 읽게 되면서 일은 물론이고 연애까지도 성공한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도서관에 가면 이와 관련된 책이 수백권에 이를 만큼 인류의 가장 오랜 숙제 중 하나다. 이를 풀기 위해 종교·철학·심리학, 심지어는 관상학까지 동원됐지만 아직 누구도 정답을 밝혀내진 못했다. 이제 과학자들이 그 숙제에 도전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감각과 기능을 제어하는 뇌 신경을 컴퓨터로 분석하고 이를 기기, 인간과 소통하는 등의 연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2002년 6월 10일 케빈 워릭 영국 레딩대 교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경을 통한 첫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아내와 자신의 몸에 칩을 넣고 컴퓨터가 신호를 전달하도록 해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가 느끼는 감촉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실험을 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워릭 교수가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아내 역시 공포감을 느끼게 되는 식이다. 워릭 교수는 이미 이에 앞서 1998년에도 자신의 팔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 일주일 동안 자신의 위치신호를 컴퓨터에 전송하는 실험을 한 바 있다. 그의 실험은 스스로가 사이보그가 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워릭 교수가 이같이 사이보그 실험에 매달리는 이유는 머지않아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가 출현해 자칫하면 인간을 지배하는 데 이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경우에 대비해 인간도 기계를 능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실험은 필수라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워릭 교수의 실험과 유사한 연구들이 말 없이도 소통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종국에는 미디어나 언어조차 필요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언어가 없는 소통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런 연구들이 뇌파로 기기를 조절해 장애인들도 비행기 조종과 같은 고난도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할 것이란 낙관적인 예측도 나온다. 또, 사람이 거리를 걸어가면 그의 뇌파를 인지해 필요한 정보를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는 새로운 광고 방식에 대한 기대도 있다.
인간의 뇌와 뇌 사이, 뇌와 기계 사이의 소통은 여전히 실험실 안에서만 이뤄지는 중이며, 현재 상태로는 이른 시일 내 상용화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 때문에 일련의 실험들이 이뤄낼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명확히 규정하는 것 역시 어렵다. 다만, 인간의 마음까지 분석하고 통제하는 과학적 실험 결과물이 나왔을 때 이를 선하게 사용할 수 있는 현명함이 우리에게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