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일 치러진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의미 파악에 분주하다. 나도 이번 선거 결과가 한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가늠하면서 지켜보았다. 여러 매체에서 다각적인 분석을 내놓았지만, 한 라디오방송에서 진행됐던 인터뷰가 눈에 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미래를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한다.
CBS 이종훈의 뉴스쇼는 최근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를 전화로 인터뷰하면서 지방선거 결과의 의미에 대한 진씨의 시각을 전했다. 진씨는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가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위해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란 일부의 주장은 진보신당 지지자들에게 투표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한다. 대안들의 경쟁이어야 할 선거가 어쩔 수 없이 ‘최악’이나 ‘차악’을 선택하는 행위가 된다면 누가 투표하고 싶겠는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답보상태에 있다고 지적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정당을 통한 대안 경쟁의 민주주의를 구축했어야 했지만 실패했다는 것이다. 재벌에 휘둘리는 정치권,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문화, 대안을 만들어내야 할 정당이 부재한 탓에 한국은 무늬만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대안 없는 사회에 민주주의가 설 자리는 없다.
한국사회는 대안 추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민주당 지지자는 진보신당 지지자를 두고, 적을 이롭게 하는 또 다른 적으로 본다. 타인의 대안 추구는 나를 위협하는 적대적인 행위다. 사회가 엄청나게 다양해졌는데도 정부는 ‘경제 살리기’라는 한 방향으로만 달린다. 다른 대안은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일상에서 숱하게 대안이란 말을 쓰고 있지만, 정작 대안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안이란 말은 비주류라는 삐딱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 대안(代案)이라는 단어가 상대를 배제하는, 관계를 해치는 뜻으로 쓰인다면 다른 단어를 쓰는 것도 대안이다. 이를테면 ‘적절함’은 어떤가.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또 서로 도움이 되는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것. 중요한 것은 적절한 방안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중에서 더 적절한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시민의 정치 참여를 유도, 서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먹고살기에도 바쁜 시민들에게 참여를 격려하려면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을 지역 주민들이 일정기간 돌아가면서 맡으면 어떨까. 물론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서 제비뽑기를 통해. 민주주의란 내가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공동체가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이다.
지금처럼 시민들이 한가하게 최악이나 차악 따위를 골라야 한다면 선거는 의미가 없고, 이 나라는 점점 더 정치 엘리트나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 것이다.
박성원 하와이미래학연구소 연구원 seongwon@hawaii.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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