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1분기 경제성적표는 화려했다. 경제성장률이 7년3개월 만에 8%대에 진입하는 등 각종 지표상으로는 국제 금융위기의 터널에서 벗어났다. 우리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하지만, 지난해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았던 기저효과가 작용한데다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 환율과 원자재 가격 불안 등 대내외 복병을 고려할 때 지나친 낙관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 ‘순항’…“착시효과도 주의해야”=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작년 동기 대비 8.1% 증가해 2002년 4분기 8.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한은이 지난 4월 발표한 속보치보다 0.3%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전기 대비 경제성장률도 속보치보다 0.3%포인트 상향 조정된 2.1%를 기록했다. 3월 산업생산 지표가 속보치에서 추정했던 것보다 호조를 보이면서 괄목한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제조업 생산은 전기 대비 4.2%, 작년 동기 대비 20.7% 증가했다. 속보치 3.6%, 20.0%를 웃돌았다.
민간 소비는 작년 동기보다 6.3%, 설비투자는 29.9% 늘어나는 등 생산과 소비, 투자가 삼박자를 이루며 경기 회복을 이끌었다. 재화수출 역시 21.6% 급증해 한몫을 했다. 그러나 작년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0.2%, 전년 동기 대비 -4.3%로 부진한 데 따른 반작용도 컸다. 건설업 생산이 작년 동기보다 1.5% 증가하는 데 머무르는 등 건설 경기가 여전히 부진한 것도 부담이다.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작년 동기보다 8.9% 증가해 10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지만, 전기 대비로는 0.9% 늘어나는 데 그쳐 작년 4분기 증가율 2.7%에 크게 못 미쳤다.
실질 GNI는 국민의 체감 경기와 호주머니 사정을 보여준다. 작년 1분기 실질 GNI 증가율(전기 대비 -0.7%, 전년 동기 대비 -5.4%)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국민의 지갑 사정이 나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전기 대비 추이를 볼 때는 체감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은은 “교역조건 악화로 실질 무역손실 규모가 작년 4분기 5조4천억원에서 올해 1분기 8조1천억원으로 커지면서 1분기 실질 GNI 증가율(전기 대비)이 실질 GDP 성장률을 밑돌았다”고 설명했다.
총저축률은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이 민간과 정부의 최종소비지출보다 더 많이 늘어나면서 작년 4분기 30.6%에서 올해 1분기 30.8%로 상승했다. 국내총투자율 역시 같은 기간 26.8%에서 28.4%로 높아졌다.
그러나 국제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 2분기 총저축률 31.2%, 국내총투자율 31.5%에 다소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경제 성장의 원천이 되는 저축과 투자는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인상 압박…“경기 하강보다는 둔화”=기저효과를 고려하더라도 우리 경제의 회복세가 빠른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아 연간 성장률이 한은의 전망치 5.2%를 웃돌 가능성이 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5.5%에서 5.9%로 상향 조정하면서 경기가 안정 국면에 접어든 만큼 물가 불안 등에 대비해 조속히 금리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후 경기는 대내외 변수를 감안해도 하강보다는 둔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1분기에는 중국 등 신흥국이 눈에 띄게 성장했고 선진국 회복 속도 역시 좋아 우리 수출에 영향을 주면서 경제 성장 속도가 빨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하반기로 가면서 경기 상승 탄력은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권 실장은 “남유럽의 재정위기와 중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은 경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며 국내적으로 건설, 부동산 분야도 상당히 좋지 않아 관련 산업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경제연구실장은 “1분기 경제성장률은 예상을 뛰어넘었다”며 “그러나 앞으로 2분기, 3분기로 갈수록 상당한 조정이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실장은 “이는 경기 하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성장세는 지속하지만 강도가 둔화한다는 것”이라며 “최근의 환율 하락세가 앞으로 수출에 반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 실장은 “이런 점을 볼 때 1분기의 높은 성장세를 지속적으로 끌고나가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2분기에는 전기 대비 1.0% 이하의 성장률을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은 2분기에도 우리 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할 것으로 보면서도 하반기 전망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은이 지난 4월 발표한 성장률 전망치(전기 대비)는 상반기 1.2%(2분기 0.8%), 하반기 1.0%이다.
한은 정영택 국민계정실장은 “`상고하저’ 전망처럼 하반기에는 (경제 성장에) 유가 등 제약 요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경기 동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보고서에서 경기 회복세가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남유럽 재정위기의 장기화 가능성, 천안함 사태에 따른 대북 리스크(위험) 등을 경제의 잠재적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재정부는 “대내외 불확실성을 고려해 당분간 현재의 정책기조를 견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입장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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