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2022 월드컵 한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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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인이 열광하는 월드컵 시즌이 4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3D로 생중계되는 최초의 스포츠행사란 점에서 축구팬이 거는 기대감은 더욱 크다. 과연 입체안경을 끼고 ‘대∼한민국’을 외치면 월드컵을 보러 남아공까지 갈 필요가 없어질까. 이러한 가설이 신형 TV를 더 팔기 위한 상투적 과대광고가 아니라는 것을 축구팬들로부터 인정받게 된다면 우리가 알던 월드컵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 대리가 적금 깨서 남아공 월드컵 간대요. 얘가 뭘 몰라요. 3DTV에 스카이라이프 달면 남아공 갈 필요 없어요∼.”

 라디오에서 들리는 여자 성우의 한 광고멘트는 월드컵이란 초대형 이벤트 행사의 성격이 3D기술과 만나면서 근본적 변화를 겪을 것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FIFA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총 25개 경기를 3D영상으로 촬영해 각국 방송국에 생방송으로 내보낼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SBS가 시범방송 채널로 월드컵 3D중계를 하고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를 비롯한 케이블과 IPTV업체도 3D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3DTV가 설치된 거실이 아니라 수만명이 모인 길거리서도 튀어나올 듯한 입체영상을 즐길 수 있다.

 SBS는 월드컵 주요 경기일정에 맞춰서 서울 삼성동의 봉은사 사거리와 삼성역 구간의 차량통행을 막고 거리응원전을 진행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길이 20m의 대형 3D 전광판이 거리응원전에 설치된다는 사실이다. 수만명의 응원전 참가자는 주최 측에서 나눠준 검은색 3D안경을 쓰고 전광판에 비치는 태극전사의 경기장면에 ‘대∼한민국’을 외칠 전망이다.

 FIFA의 월드컵 3D중계는 대회 흥행에 큰 도움을 주겠지만 역설적으로 FIFA의 전통적 수익모델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월드컵의 진정한 감동을 거실과 광장에서 똑같이 느낄 수 있다면 굳이 금처럼 귀한 축구티켓을 구하려고 경기장 앞에서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FIFA로선 다급해졌다. 첨단 영상기술이 실제 월드컵 경기의 리얼리티를 온전히 따라잡기 전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서둘러 발굴해야 한다. 이러한 초조감은 도를 넘은 상업주의로 엇나가고 있다.

 FIFA는 뻔뻔하게도 한국민이 독창적으로 만든 월드컵 문화인 전광판 응원전을 벌일 때도 반드시 중계료를 받도록 SBS에 공문까지 보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수백만 한국인이 축구장에 가지 않고도 생생하게 월드컵 경기를 즐기는 모습은 FIFA 입장에서 굉장히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의 3D중계는 첫 번째 시도기 때문에 영화 ‘아바타’로 한껏 올라간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추긴 어렵다. 3D영상 콘텐츠의 완성도가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월드컵 경기를 3D영상으로 중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기술상의 제약이 아니라 넓은 장소에서 펼쳐지는 축구의 구조적 특성이다.

 관객이 실제 월드컵 경기장을 찾으면 구장 전체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선수들이 뛰는 모습은 손톱처럼 작게 보이는 원거리 시점(롱샷)에 익숙해진다. 축구 중계의 과반을 차지하는 롱샷 촬영에서는 3D영상의 장점인 입체감이 거의 부각되지 않는다. 일반 TV로 보나 3DTV, 3D 전광판으로 봐도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요즘 3DTV를 선전하는 광고물을 보면 한결같이 축구선수가 골대 근처에서 슛을 날려 그물이 흔들리는 근접촬영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공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3D영상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구중계는 롱샷과 근접촬영이 적당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 FIFA가 막대한 3D 방송장비 투자를 회수하려고 CF처럼 빠른 템포의 근접샷을 중계방송에서 남발한다면 많은 시청자는 오히려 어지러움과 짜증을 느낄 수도 있다.

 

 ◇2022 월드컵, 숙명의 한일전은 되풀이된다=남아공 월드컵에 처음 접목된 3D기술은 현 단계에선 다소 미숙하지만 2022년에는 월드컵의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3D기술이 월드컵 대회에 중장기적으로 미칠 변화의 핵심은 ‘개최국이 아니라도 월드컵의 진정한 감동을 세계 어디서나 똑같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축구협회가 오는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해 FIFA에 제안한 파격적인 공약을 살펴보면 그들이 구상하는 ‘3D+월드컵’의 놀라운 미래상에 입을 다물기 어렵다.

 일본축구협회는 FIFA 회원국 208개국의 경기장 400곳을 선정해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를 3D 홀로그램 영상으로 실시간 전송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일본의 주요 월드컵 경기장에는 200개의 8K 고화질카메라가 빙 둘러서 설치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축구선수와 공의 움직임을 360도 영상으로 찍어서 시청자가 원하는 각도로 선택해서 볼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너무나 유명한 장면인 총알 피하기, 공중부양 발차기처럼 축구선수의 슛동작도 360도로 돌리면서 감상할 수 있다. 또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잔디를 밟고 헐떡이는 소리까지 수십개의 고성능 마이크로 잡는다.

 이처럼 경기장 전역을 커버하는 고화질 영상과 사운드는 초대용량 광케이블을 통해 세계 208개국으로 실시간 전송된다. 다른 나라의 축구팬은 사방으로 거대한 홀로그램 영사막이 둘러쳐진 경기장에 앉아서 자국 선수의 경기장면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또 관람객이 축구응원가를 부르며 발을 구르는 생체에너지와 태양열 발전으로 스타디움의 전력수요 일부를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208개의 미소’라고 명명된 홀로그램 월드컵 중계를 위해서 무려 5500억엔, 우리 돈 7조원을 투입해 관련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무라이 준 게이오대학 교수는 “홀로그램 월드컵 중계에 필요한 기술은 이미 테스트를 완료했다. 일본은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다”고 자신한다. 지구촌 전체를 월드컵 스타디움으로 만들어 어느 나라에서도 ‘진짜 축구경기’를 관람토록 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FIFA 관계자가 정상적 이성을 갖고 있다면 이러한 떡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일본 측에서 제안한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월드컵 대회의 부가가치는 공간 제약에서 벗어나 지금보다 몇 배 더 커진다. 당연히 2022년 월드컵은 일본에서 단독 개최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높다.

 FIFA 입장에선 일본의 월드컵 개최로 애타게 찾던 3D 기반의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확보할 수 있다. 월드컵 경기를 영화 매트릭스, 아바타를 능가하는 최고급 홀로그램 대박 콘텐츠로 만들어 주겠다는데 어찌 마다할까.

 우리나라도 2022년 월드컵 대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한국과 일본은 2002년 대회 유치경쟁 이후 또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됐지만 이미 게임은 끝난 분위기다.

 한국축구협회는 월드컵을 다시 개최할 이유로 한반도 평화를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 주장했다는 소식이다. 월드컵을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로만 인식하는 한국 축구계 인사의 상상력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에 일본은 21세기 월드컵 시장에서 3D기술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다. 일본축구협회와 기업은 머리를 맞대고 3D 원천기술의 우위를 활용해 개최국의 선택된 소수만이 누리던 월드컵의 진정한 감동을 전 세계인과 공유하겠다는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소니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에게 3D 고화질 카메라를 제공하는 등 3D 방송장비와 콘텐츠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일본기업은 축구장 전체를 실시간 3D 홀로그램으로 뒤덮겠다는 황당한 발상을 현실화시킬 원천기술과 자본력을 갖고 있다. 비록 3DTV 출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한발 뒤졌지만 10년 뒤엔 대형 홀로그램 장비를 상용화해 소니 브랜드로 세계 영상시장을 석권한다는 전략이다.

 일본은 월드컵에 대한 축구팬의 꿈을 실현시키는 첨단기술의 선두주자로서 자신을 포지셔닝했다. 이러한 계획이 실현된다면 일본은 월드컵 순위와 상관없이 세계인의 부러움을 받는 우승국가로서 영광을 누릴 것이다.

 21세기 월드컵은 단순히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주최국의 기술력과 상상력이 곁들여진 융합상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현재 한국 월드컵 대표팀의 객관적 전력이 일본보다 앞선다고 자만해선 안 된다. 2022년 월드컵 한일전에서 우리가 승리하려면 공차는 실력 이상의 국가적 비전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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