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은 보수적이고, 실패는 혁신적이다.’
과거 신선한 발상으로 성공을 맛본 기업은 실패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방법을 고집하면서 점차 보수화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방법을 찾았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고루한 구시대의 산물로 변한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인 ‘스파르타’는 혁신적인 전략과 전투법으로 600년 동안 최강자의 위치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거의 방법을 고집했고, 전략과 전술이 경쟁자들에게 읽히면서 패배를 거듭하게 된다. 심지어 속국처럼 주무르던 도시국가 ‘테베’에 패해 멸망의 길로 간다.
국내외 수많은 벤처기업이 처음에는 성공하다가 과거의 방법을 고집하고 혁신을 중지하면서 시장에서 퇴출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면에 한 번 실패했더라도 재기할 수 있다면, 그 경험은 방향 전환의 전주곡이 돼 기업에 혁신을 자극하고 성공을 이룩할 수 있게 한다.
◇골리앗에 도전해 성공을 맛본 다윗=디스플레이 부품소재 전문기업 미래나노텍이 회사를 설립한 2002년 당시 평판디스플레이(LCD)용 광학필름 시장은 글로벌 기업 3M이 100% 독점하고 있었다. 3M은 수만명의 인재와 8만개 이상의 상품을 보유한 골리앗 기업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LCD용 광학필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수차례 도전했지만, 3M의 벽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했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이 시장에 겁없는 벤처회사 미래나노텍이 도전을 했다.
모든 기업들이 도전 자체가 무의미한 시장이라고 봤지만, 미래나노텍은 발상을 전환해 절망보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시장은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원천 기술만 확보하면 얼마든지 공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3M이 특허로 다른 기업들의 진입을 막고 있는 것을 약점이 아닌 장점으로 인식했다. 우선 시장에 진입하면 3M이 방어벽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LCD용 광학필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3M의 특허를 피해가는 것이 중요했다. 3M의 특허는 프리즘 필름 표면을 빛을 모으기에 유리한 삼각형 돌기로 만들었다. 그러나 미래나노텍은 반구형 패턴을 개발해 특허 분쟁을 피해갈 수 있었다.
특허의 산을 넘으니 가격 경쟁력이라는 또 다른 산이 버티고 있었다. 미래나노텍은 또 한 번의 혁신으로 난관을 극복한다. ‘소프트 몰딩’이라는 새로운 공정 기술을 개발해 원가 경쟁력 수준을 확연히 높였다. 기존 공정은 금속에 패턴을 새겼지만, 미래나노텍은 필름 재질에 패턴을 새기는 방식으로 소모 자재인 몰드 원가를 50분의 1로 줄였다.
3M이라는 강자와 경쟁하면서 자연스레 미래나노텍도 무서운 기업으로 변신했다. 미래나노텍은 분산필름과 프리즘필름을 융합한 ‘복합 필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다시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2005년 153억원의 매출을 올린 후 이듬해에는 629억원으로 급성장한다.
◇성공은 위기를 부르고, 위기는 다시 혁신을 요구하다=역설적이게도 회사가 성공을 거듭하며 고도성장하면서 문제도 잇따라 커졌다.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관리 부문에서 공백이 생겼다. 주문량은 폭주하는데, 이를 소화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당장 직원 수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니 직원 교육에 투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위기는 곧 증폭됐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서, 거래 업체의 불만이 커졌고 그동안 쌓은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튼튼한 방어벽 역할을 했던 3M의 특허가 종료되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 경쟁사들이 유사한 제품을 개발해 잇따라 시장에 진입했다. 신규업체들이 우후죽순 늘면서 공정가격이 무너졌고, 미래나노텍의 영업이익도 빠르게 하락했다.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미래나노텍은 과거의 성공을 잊고 새롭게 회사를 정비했다. 위기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고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해야 할 ‘창조적 파괴’를 감행했다. 그 결과 따로 보호필름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복합멀티필름 원천 기술을 확보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했다. 복합멀티필름은 대성공을 거뒀고, 기술 강국인 일본마저도 부러워하는 제품이 됐다.
2009년 말 미래나노텍은 광학필름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거뒀다. 과거 100%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던 3M은 22%로 주저앉았다. 한국의 작은 벤처기업이 골리앗 3M을 격침한 것이다.
김영철 미래나노텍 사장은 “성공하면 누구나 안락한 틀 안에서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면서 “그럴 때일수록 과거의 영광을 잊고 혁신을 거듭해야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챔피언’이 아닌 새로운 도전자의 길을 택하다=광학필름 시장에서 1위를 달성했지만, 미래나노텍은 새로운 도전에 골몰하고 있다. 올해 5000억원, 내년에는 1조원의 매출을 달성해 중견기업의 입지를 다지겠다는 목표다. ‘2015년 매출 2조원 달성’이라는 비전을 정하고 성장 발판 마련을 위해 고삐를 죄고 있다.
재귀반사필름, 투명전극(ITO)용 하드코팅필름, 발광다이오드(LED) TV용 도광판, ITO 대체필름(GEF) 등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재귀반사필름은 도로 교통표지판, 안전용품, 광고 원단 등에 사용되는 제품으로 2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추산된다. 3M이 90%의 점유율을 차지한 독점시장이다. 미래나노텍은 올해 120억원 규모의 재귀반사필름 공급 계약을 맺었으며, 총 20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터치스크린패널에 적용되는 ITO 하드코팅 필름은 일본 제품이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터치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ITO 하드코팅 필름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일본 업체만 배를 불리고 있다. 미래나노텍은 필름 코팅 기술을 활용해 ITO 하드코팅 필름 개발에 성공해 일본 제품을 대체하고 있다. 지난 4월 오창 제2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했다. 올해 150억원의 신규 매출이 기대되며, 내년에는 500억원 이상 매출을 달성할 계획이다.
해외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05년 전체 매출의 4%(4억원)에 불과했던 수출 비중은 지난해 41%(1100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 2008년에는 해외시장 개척 및 수익성 확보를 위해 대만 창화일렉트로머티리얼스와 합작 벤처인 ‘웰스테크(Wellstech)’를 설립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