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컬럼]누가 대장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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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동네 뒷산 정도면 편한 운동화 하나로 충분하다. 그러나 오은선 대장이 등정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문적인 장비도 필요하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히말라야와 같은 고산 등정은 ‘셰르파’라고 불리는 현지인들이 함께 간다. 셰르파는 에베레스트 남쪽 기슭 3000m 이상 고산에 사는 티베트계 네팔인들을 뜻하지만 등산인들 사이에서는 등정을 돕는 사람 정도로 통한다.

이번 안나푸르나 등정에도 셰르파 ‘옹추’가 오 대장과 함께 산을 올랐다. 옹추는 수십년간 히말라야 14좌 중 10곳을 오른 베테랑 산악인이다. 안나푸르나 정상을 향할 때도 오 대장보다 앞서 오른 사람이 그다. 그럼에도, 산악계는 셰르파를 정식 등반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역사는 단지 ‘오은선 대장이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다’고 기록할 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셰르파를 데려갈 것인지, 어디에 캠프를 설치하고 언제 정상에 도전할지를 결정한 사람이 오 대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산대장이다. 역사는 영광과 실패의 모든 책임을 대장에게 묻는다.

 산을 오르는 데 있어 대장과 셰르파는 서로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다. 고지대에서 탁월한 등산 능력을 가진 수많은 셰르파들이 등산 대장의 성공을 돕는다. 짐을 나르는 짐꾼(포터)이 있다. 캠프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쿡)도 있다. 캠프와 마을을 오가며 연락을 담당하는 셰르파(메일러너) 역시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이런 셰르파를 총괄 지휘하는 사람을 ‘사다’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셰르파의 대장이다. 오 대장과 14좌 도전 중 6곳을 함께 오른 옹추가 바로 사다다. 사다가 없으면 셰르파는 말이 안 통하는 현지 원주민일 뿐이다. 서로 가벼운 짐을 차지하려 싸우다 원정대를 버리고 도망을 가기도 한다. 그래서 셰르파 대장(사다)은 원정대의 또 다른 리더다. 역사는 기록하지 않아도 세상은 안다.

 대한민국은 지금 ‘융합’과 ‘창조’라는 거대한 산 앞에 서 있다. 이 산을 넘어야 미래가 보인다. 어디에 캠프를 치고 어떤 루트로 정상에 오를지를 결정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다. 미래의 험난한 봉우리를 함께 넘어갈 대장과 셰르파가 필요하다.

 우리 미래를 짊어지고 융합과 창조 시장을 개척할 주인공은 당연히 기업이다. 1차적인 판단과 책임은 송두리째 기업들의 몫이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이자 사회적 책임이다. 그러나 모든 짐을 기업에만 지울 수는 없다. 정부도 있고 연구소와 대학, 그리고 정치인과 언론도 무거운 짐을 조금씩 나눠 져야 한다. 그럼, 이제 우리 스스로 한번 물어보자.

 “우리는 히말라야보다 훨씬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대장과 셰르파가 필요합니다. 누가 대한민국 원정대장이고 셰르파입니까? 그리고 수많은 셰르파의 역할을 조정하고 지휘할 대장(사다)은 또 누구입니까?”

주상돈 경제과학담당 부국장 sd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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