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그래도 담배, 교통체증, 식사량 등 참고 지내야 할 것이 많은데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참고 지내야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고문이다. 앞에선 웃고 뒤에선 고자질하는 인간 쓰레기, 삼척동자가 울고 갈만큼 잘난 척하는 자뻑, 어려운 일만 터지면 뒤로 쏙 빠지는 미꾸라지,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블랙홀 등 열중 아홉은 진절 넌덜머리가 난다. 그렇다고 남은 한명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있으나 없으나 관심 없는 부류라고나 할까. 마음에 딱 맞는 고교동창 같은 직장동료를 만나는 것은 정말 유토피아일까?
친구는 선택할 수 있지만 가족은 선택할 수 없고 회사는 선택할 수 있지만 동료는 선택할 수 없다. 동료는 선택하고 고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맞추고 어울려야 하는 상대다. 동료는 업무를 하면서 우정을 쌓기도 하지만 업무 때문에 서로를 미치게 만들기도 한다. 인원 감축 때문에 적은 인원이 일당 백을 해야 하고 부동산 비용 절감 때문에 다닥다닥 붙어서 지지고 볶는 일이 많아졌다. 이런 때 일수록 어른다운 태도를 보이자. “한살 나이를 먹더니 철 들었네”라든가 “이제 철 좀 들어라” 라는 말을 한다. ‘철 들었다’라는 뜻이 쇠가 들었다는 것인지, 몸 안에 계절이 들어찼다는 것인지 어원이 궁금하다. ‘철 들었다’에 쓰이는 ‘철’은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라는 고유어다. ‘철’은 드러나지 아니한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다. 일찍 철든 아이는 부모님의 흰머리를 보면서 세월이 흐르면 머리가 희게 변하는구나 라는 것만 아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희도록 애쓰신 부모의 지난 일상을 유추해낸다. 동료에게도 철 좀 들자. 보이는 모습만 보고 손가락질 하지 말고 말하지 않는 이면까지 관찰하고 이해하고 돌보자. 드러나는 이상한 모습보다 드러나지 않은 개인사, 콤플렉스, 강박, 불안에 대해 이해하고 나면 그에게 너그러워진다. 철 들어서 꿰뚫어보면 사람에 대해 유연함이 생긴다. 동료를 싫어해봐야 내 마음만 지옥이다. 먼데 있는 단 냉이보다 가까이에 있는 쓴 냉이가 나은 법이니 싫어할 바에는 이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