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미래사회]<15> 인류의 마지막 아이

 일본 쓰쿠바 대학의 대학원생들이 지난 3월 ‘로봇 신생아’를 만들었다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기의 이름은 요타로(Yotaro). 조그마한 침대에 누워 칭얼거리기도 하고, 까르르 웃기도 한다. 울 때는 눈에서 따뜻한 눈물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 로봇을 만든 이유가 재미 있다. 아직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들이 요타로를 통해 아이 키우는 즐거움을 경험한다면 출산율 최저 국가의 오명을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타로를 보면서 나는 다른 상상을 했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거나, 누구도 아이가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상황이 지구에서 펼쳐진다면 요타로는 인류의 마지막 아이가 되지 않을까.

 망가진 지구에선 아이를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아 로봇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유일하게 부모를 체험할 수 있는 시대. 생각만 해도 끔찍하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계가 다가올 것을 염려하고 있다.

 프랑스의 미래학자 파비엔은 홍수, 쓰나미, 허리케인, 지진, 가뭄으로 21세기 초에만 2500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에 물 부족, 기근, 전염병 창궐이 더해지면서 21세기 말, 15억명이 죽거나 떠돌이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조셉 코우츠는 100년 안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사건으로 기후변화, 거대 지진, 화산 폭발, 핵전쟁 뒤 다가오는 가공할 핵겨울, 암이나 유전자 변형을 일으킬 감마선 노출을 꼽는다.

 인간을 능가할 로봇, 유전자 해킹, 변형 생물학은 아직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조차 어렵다.

 이런 예측들은 너무 끔찍해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움직인다. 예고 없는 지진, 쓰나미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가. 또 다른 쇼킹한 사건 때문에 잠시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졌을 뿐 인류를 위협할 사건은 우리의 삶에 바짝 붙어 있다.

 미래학이 주는 교훈은 역설적이게도 ‘내일은 없다’는 것이다.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나나 당신이나 예고 없는 사건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우린 이런 사회를 꿈꿀지 모른다. 첫째, 분배의 공평함. 둘째, 약자의 보호.

 이는 어느 사회주의자의 해묵은 주장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존 롤스 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세계를 꿈꾸는 이유는 우리의 후손이 대대로 평화롭게 살기를 갈망하는 데서 나온다. 그러자면 내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보다, 누구도 내일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박성원 하와이미래학연구소 연구원 seongwon@hawaii.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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