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지하철에서 대학생들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주제는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그 날은 마침 ‘재미 이론’ 특강을 위해 모 대학으로 가던 중이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호기심에 이끌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급기야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게 되었다. “저, 좀 전에 ‘베오울프’란 영화가 무지하게 재미있었다고 하던데, 왜 재미있었나요?” “그게… 음… 그냥 최첨단 그래픽 기술과… 그리고…음…음… 암튼 재밌어요”
대학생들은 그제서야 얼굴이 진지해졌다. 영화가 확실히 재미있었고, 나도 재미있다고 주장했는데, 왜 재미있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해한 듯하다. 중학생과 고등학생들 집단에서도 반응은 유사하게 나타났다. “음.. 재미있으니까, 재미있는 것이지, 재미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이들의 반응에서 나는 짐작하고 있었던 또 하나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콘텐츠를 통해 재미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데 반해 “왜 재미있는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는구나’.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재미’는 중요한 창작 트렌드인 동시에 흥행성과 성공을 보증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문화콘텐츠가 재미없다면 팔리지도 않을 것이며 실패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까지 문화콘텐츠 창작자들은 그동안 막연하게 느껴온 경험이나 직관에 의존해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물론 그들의 창의력과 재미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문화콘텐츠 산업은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돼 정부에서 집중 육성하는 분야고, 콘텐츠 흥행과 성공의 핵심 요인이 ‘재미’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재미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한 것임에 틀림없다. 김정운 교수는 그의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21세기의 핵심 가치는 ‘재미’라고 단언한다. 노동기반사회의 핵심 원리가 근면과 성실이라면, 지식기반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원리는 ‘재미’다.
할리우드의 콘텐츠는 모두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우리는 그것을 재미있다는 이유로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경험하고자 한다. 우리가 만든 문화콘텐츠가 “한류(韓流)를 타고 동남아를 거쳐 다른 대륙까지 넘어가고 있다. 이러한 성공 또한 그들이 체험하고 싶은 감성 중 하나인 ‘재미’라는 요소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체험의 경제 시대에 ‘재미’는 문화콘텐츠 산업이 확보해야 할 가장 원천적인 자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재미에 대한 이론 하나 변변하게 준비되고 있지 못하다. 인문학과 공학의 통섭이 문화콘텐츠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주장은 대두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왜 ‘재미’를 찾고 있는지, 그들이 찾고 있는 ‘재미’를 어떻게 주어야 더 재미있는 것인지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편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몇몇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재미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가 문화콘텐츠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지향한다면 ‘재미’에 대한 연구는 기초 연구로서 반드시 준비돼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재미에 대한 연구는 재미있는 이야기, 재미있는 영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해 우리의 문화콘텐츠 산업에 경쟁력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윤형섭 건국대학교 외래교수·게임학박사 quesera2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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