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정복하려는 인류의 꿈은 항공기술에 놀라운 혁신을 가져왔다. 21세기에는 더 높이, 더 빨리 하늘을 나는 첨단 항공기술 외에도 지속가능한 친환경 녹색비행이 항공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각될 전망이다. 화석연료 대신 지구환경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신재생에너지로 중력을 극복하는 녹색비행은 이제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1999년 8월 위성휴대전화서비스 이리듐은 15억달러가 넘는 채권을 상환하지 못하고 끝내 파산했다. 이리듐은 무려 66개의 저궤도 위성을 쏘아올려 전 세계를 하나의 통화권으로 묶는다는 거창한 계획으로 관심을 끌었지만 너무 비싼 통화료와 잘못된 시장 예측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리듐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항공기술사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막대한 발사비용이 드는 저궤도 위성통신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이를 대체할 수단으로 고고도 무인비행기 개발에 착수한 상태였다.
저궤도 위성을 대신할 고고도 비행체는 20∼30㎞ 고도의 성층권을 계속 선회하면서 하늘의 기지국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가장 큰 기술적 난제는 비행기를 최장 몇 년씩 띄울 수 있는 지속가능한 동력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NASA는 화석연료 대신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을 이용한 고고도 비행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태양전지의 낮은 효율로는 아무리 기체를 가볍게 해도 하늘을 날 만큼 충분한 전력을 생산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NASA는 이리듐이 파산한 직후 세계 최초의 태양광 무인기 ‘헬리오스(Helios)’의 첫 번째 시험비행에 보란 듯이 성공한다. 헬리오스는 초생달 모양의 커다란 날개 전체에 6만2000장의 태양전지판을 다닥다닥 붙여 전기를 만든다. 태양광 발전으로 돌아가는 14개의 프로펠러와 탄소섬유로 제작된 가벼운 동체 덕분에 헬리오스는 2001년 29.5㎞ 상공까지 올라가는 세계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2003년 6월 하와이에서 장시간 시험비행을 위해 고도를 높이던 중 8000m 상공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영국, 일본, 독일 등은 많은 발사비용이 필요한 저궤도 인공위성을 대체할 무인비행기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미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최장 5년간 비행을 지속하는 태양광 무인기 ‘벌처(Vulture)’ 개발에 착수하고 3대 비행기가 고고도에 올라간 뒤 `ㄱ`자로 꺾여 결합하는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국내서도 태양전지로 하늘에서 몇 달씩 떠 있는 고고도 무인항공기의 국산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한국항공대와 KIST는 지난달 저궤도 위성을 대체할 무인항공기 개발을 위해 각각 무인기 설계기술과 태양전지 동력기술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국산 고고도 무인항공기는 날개 길이가 40m에 달하며 60㎏의 관측장비를 부착하고 20㎞ 상공을 날아다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밤에는 리튬배터리에 충전해둔 전기로 고도를 유지한다.
송동호 항공대 교수는 “내년 여름에는 태양광 무인기의 48시간 연속비행에 도전할 계획이다. 기체 디자인은 외국과 달리 가오리와 유사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고고도 무인기에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접목한 것은 순전히 위성체와 경쟁 목적으로 비행시간을 늘리려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소배출 제로의 친환경성을 실제로 구현한 것은 항공기술사에 획기적 사건으로 높이 평가된다.
◇유인 녹색비행의 개막
사람이 탑승하는 유인 비행기도 신재생에너지로 하늘을 나는 녹색비행이 가능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스위스의 한 공군기지에서 세계 최초의 태양광 유인 비행기 ‘솔라 임펄스’가 첫 비행에 성공했다. 이 비행기는 태양전지판으로 전동프로펠러를 돌리는 동력방식은 헬리오스와 동일하지만 훨씬 앞선 설계와 동력기술 덕분에 사람을 태울 수 있다.
솔라 임펄스는 첫 비행에서 지상 1m 높이로 겨우 350m를 날았다. 라이트 형제가 1903년 세계 최초의 동력비행에서 기록한 260m보다 약간 앞서는 수준이다. 솔라 임펄스는 겨우 한 명이 타지만 날개 길이는 점보제트기와 맞먹는 63m에 달하며 내후년에는 80m로 더 늘릴 계획이다. 이처럼 거대한 날개에는 태양전지판 1만2000개가 각각 장착되며 4개의 전동프로펠러를 돌려 비행기를 공중에 띄운다.
날개 달린 비행기는 끊임없이 동력을 전달받지 못하면 고도를 잃고 추락하고 만다. 가장 유력한 대안은 높은 하늘에서 마음껏 얻을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즉 태양광을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낮에는 구름이 없는 고도 1만2000m까지 높여 전력을 최대한 생산하고 태양이 없는 밤에는 모터출력을 줄이면서 글라이더처럼 서서히 고도를 3000m까지 낮춘다. 솔라 임펄스는 2012년 대서양 횡단에 나서고 세계 일주도 추진할 예정이다.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최초의 비행체 기록을 세우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태양광 유인비행기가 실용화돼도 속도가 느리고 제작비가 너무 비싼 이유로 항공수송 분야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녹색비행이 무거운 하중을 극복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무인항공기의 성능을 높이고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창출하는 효과가 예상된다.
솔라 임펄스는 비록 운항속도는 시속 70㎞에 불과하지만 친환경 녹색비행을 추구한다는 분명한 목표하에 제작된 최초의 유인항공기로서 역사적 가치는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에 비견될 만하다.
◇녹색비행의 전망과 파급효과
녹색비행은 항공기술에 첨단 정보통신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현재 태양광을 이용한 무인기의 최장시간 비행기록은 3일 남짓하다. 향후 4∼5년 내 공중에서 한 달씩 머무는 무인비행기술은 어렵지 않게 실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전망은 항공소재, 설계기술 발전보다는 IT산업의 비약적 발전 추세에 근거한 것이다.
친환경 바람을 타고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모여든 거대자본은 태양전지판의 효율을 꾸준히 향상시킨다. 낮에 태양전기를 저장했다가 야간에 프로펠러를 돌리는 2차배터리도 매년 가볍고 강력해지면서 비행성능을 높이고 있다. 결국 신재생에너지로 푸른 하늘을 나는 친환경 항공기술, 녹색비행의 실용화는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태양전지판과 무인항공기의 결합은 비교적 낮은 고도에서 특정 지역을 꾸준히 감시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수단이어서 경제, 군사적 가치가 높다.
한 번 뜨면 좀처럼 지상에 내려오지 않는 무인항공기, 녹색기술로 중력을 극복한 친환경 비행수단이 널리 보급될 때 변화상을 예측해보자. 우선 아프리카와 같은 인구밀도가 낮은 국가, 오지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통신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궤도 위성을 대체하는 무인기를 기지국으로 활용하면 웬만한 대도시 하나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여준구 항공대 총장은 “태양전지를 이용한 항공기술은 이론적으로 몇 달, 몇 년씩 공중에서 활동하면서 인공위성을 대체할 수 있어 통신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류가 지구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신재생에너지로 중력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대기오염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게 된다. 성층권에서 내려다본 지상의 모습은 우주공간의 인공위성에서 몇 달 전 촬영한 구글어스 영상보다 훨씬 해상도가 높고 선명하다. 신속한 처리과정과 융통성을 부여할 여지가 많다. 당연히 도로 위의 지체구간과 같은 실시간 교통정보와 각종 위치정보기반서비스(LBS)의 실시간 동기화가 크게 촉진된다. 쓰레기 수거차가 지금 우리 아파트 앞에 도착했는지 직장에서도 눈으로 확인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어디든지 원하는 장소의 실시간 영상을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지전능한 신의 관점에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앞으로 20∼30년 뒤에는 아이가 갖고 노는 모형비행기도 한 번 날리면 몇 일씩 마을 상공을 떠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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