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힘겹게 헤쳐내온 지구촌 경제가 ‘그린(Green)’이라는 새로운 지향점과 ‘컨버전스(융합)’라는 산업적 테마를 안고 변화의 파고를 넘고 있다. 그리고 그 견인차로 IT가 자리잡고 있다.
세계 IT시장은 웹2.0 등 참여와 공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프로슈밍(Prosuming)’, 이종 환경간 결합으로 창조적 가치를 만드는 ‘컨버전스’, 바이오·나노 등 다양한 기술의 결합을 통한 ‘임베디드IT’ 등으로 다각화하며 새로운 성장을 모색중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IT강국, 코리아’라는 자부심 섞인 수식어를 외쳤던 우리 경제의 오늘은 어떤가. IT 산업의 GDP 성장률 기여도는 지난 2007년 5.1%에서 2008년 2.2%로 하락했고, 수출 비중도 35.0%에서 31.1%로 하락했다. IT산업의 생산액 성장률 역시 지난 2004년 이후 GDP 성장률과 함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성장세도 정보통신 기기에 집중돼 있을 뿐 정보통신 서비스와 SW의 성장속도는 여전히 더딘 실정이다.
지난 10년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의미있는 성장을 일궈온 국내 IT산업에 지속가능한 또다른 ‘10년 대계(大計)’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비스 중심의 사고전환이 필요하다=지난 10년 우리 IT산업은 초고속인터넷과 전자정부, 반도체·휴대폰·디스플레이 등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며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의 최전방에 섰던 것도 지식정보화사회·전자정부 등의 구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도 IT산업이었다.
그간 IT는 수출과 인프라 측면에서 접근과 평가가 이뤄져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IT 분야 역시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방송과 통신이 결합된 통신방송 서비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IT서비스, 그리고 온·오프라인과 유·무선을 오가는 콘텐츠의 유통 등이 모두 서비스라는 큰 틀에서 이해되고 있다. 이제는 기술개발·인프라와 함께 융합·활용이 중요해지는 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낸 것은 IT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책과 이에대한 산학연의 지원사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 같은 노력이 가져온 성과는 이제 다른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이자 서비스로서의 IT를 위한 유기적인 조율과 투자라는 과제를 불러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현정부는 기술개발과 IT 자원의 배분이라는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더욱이 정보통신부 해체 이후 IT산업계가 느끼는 상실감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래 한국의 힘, IT’의 재확인=지난 9월초 정부는 ‘제2의 IT의 시대’를 일구기 위한 마스터플랜으로서 ‘IT코리아 5대 미래전략’을 발표했다. 정부와 민간이 합쳐 향후 5년간(2009∼2013년) 총 189조300억원을 투입한다. IT와 IT융합 기술을 활용해 2013년 잠재 성장률을 0.5% 포인트 높인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신성장동력의 확보, IT와 타 산업간 융합과 확산으로 요약되는 이 전략은 △10대 IT 융합 전략산업 △산업 경쟁력 원천으로서의 소프트웨어 △주력 IT기기의 글로벌 공급기지 △편리하고 앞선 방송통신서비스 △더욱 빠르고 안전한 인터넷 등으로 구체화됐다.
이를 위한 방안은 연방 파급효과가 큰 신기술을 개발해 확산시키는 것과 이미 확보된 IT를 기존 업종으로 확산하는 방식으로 나뉘며 궁극적으로는 거대산업의 창출을 꾀하고 있다. 전자는 현재보다 10배 빠른 인터넷, 3D TV 등이 해당되며 후자에는 자동차·조선·에너지 등 이업종 분야와 결합되는 10대 전략융합산업, 반도체·휴대폰·디스플레이 등의 대·중소기업간 융합 등이 포함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지식경제부도 2010년 업무계획을 통해 올 상반기 중 10대 미래산업 줄기기술을 선정, 최대 3000억 원을 5∼7년간 장기 지원하는 대형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오는 6월 ‘융합신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산업융합촉진법 제정’, ‘10대 융합산업 발굴’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1분기중 ‘시스템 반도체 2015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수출실적이 조저한 SW산업 육성을 위해 전반적인 관련 생태계 재편도 검토할 예정이다.
◇융합 선도조직 마련 시급=정부의 미래 IT정책이 쪼개기식 지원에서 대형과제 중심의 융합과 확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유기적인 융합과 서비스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콘트롤타워와 수행조직의 부재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는 지적이 많다. 더욱이 최근에는 스마트그리드, 클라우드컴퓨팅, 그린카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저탄소 녹색경제가 세계적인 화두가 되면서 그 핵심수단으로서 효과적인 IT의 접목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통부 해체 이후 IT융합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신기술 개발을 촉진할 실효조직이 사실상 없다. 방송통신위원회·행정안전부·지식경제부·문화관광부 등으로 나뉜 IT 정책은 일관된 정책실행이 녹록치 않고, 지난해 청와대에 신설된 IT특보의 역할 역시 현재까지 자문역과 의견수렴의 창구에 그치는 점이 아쉽다.
이는 미국 오바마 정부가 취임후 곧바로 백악관에 최고기술책임자(CTO)·최고정보책임자(CIO) 등을 신설, 새로운 형태의 IT 콘트롤타워 체계를 구축해 국가 차원의 IT정책 조율과 비용 효율화를 꾀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진원지인 미국은 지난해부터 ‘위기에서 변화로, 그리고 다시 기회로’를 슬로건을 내건 오바마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도 IT를 한 축으로 삼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닷컴 붕괴에 이어 또 한 차례 한파를 맞은 미국 IT업계는 오바마 정부가 펼칠 ‘21세기판 디지털 뉴딜’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며 경제 회생의 견인차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번 정부의 5년이 말그대로 ‘잃어버린 IT 시대’라는 항간의 우려를 불식하고 ‘제2의 IT시대’를 일궈낼 지 지켜볼 일이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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