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L의 한국 진출은 우리나라 전자제품 시장이 여전히 매력적임을 방증한다. 우리나라 가전 시장은 3조원 규모며 전체 전자제품 시장은 20조원에 이른다. 지금까지 한국에 진출한 외국 가전업체들은 토종 업체의 텃세로 인해 성적표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유통과 AS망을 쥔 삼성전자와 LG전자와의 정면 승부만 피한다면 틈새 시장을 충분히 뚫을 수 있다는 게 외국 업체들의 인식이다. 게다가 인터넷쇼핑몰, 홈쇼핑 등 전자제품 유통채널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것도 외국 업체의 발길을 재촉했다.
◇죽음의 땅, 한국 가전시장=한국은 외국계 가전사들에 ‘죽음의 땅’으로 통한다. 전자왕국 일본 기업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가전사들은 지금까지 한국의 대표주자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 1997년 수입처 다변화 제도 폐지 이후 물밀듯이 밀려 왔던 일본 기업들은 사업 구조조정은 물론이고 취급품목을 축소하는 추세다. 샤프전자와 도시바코리아가 이미 한국 내 디지털TV 사업을 접었다. 소니와 파나소닉 역시 디지털TV 등 영상가전 분야에서 삼성·LG전자에 비해 열세다. 캐논·니콘·올림푸스 등 광학 분야 원천기술을 보유한 디지털카메라 업체들만이 일본의 자존심을 지킬 뿐이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2000년대 초 한국에 진출한 하이얼은 와인냉장고 등 일부 품목은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시장 주도권을 잡기에 한계를 보인다.
◇TCL, 1인 전자제품 수요에 승부수=이 같은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중국 업체들은 우리나라 시장에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유통환경 변화 △한국인의 생활문화 변화 △장기적으로 연구개발(R&D) 센터 설립 등 다각적인 변수를 고려한 결과다. 중국업체들은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보급형 생활가전 분야에서 승산이 있다고 계산했다.
인터넷쇼핑몰 등 무인점포 시장 활성화는 중국 업체에 우호적인 환경 변화로 작용한다. 심창우 TCL코리아 대표는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개전제품(個電製品)이라는 새 시장이 열린다. 우리는 1인용 전자제품 수요에 기대를 건다”고 설명했다. TCL은 건설사 및 시스템키친 회사를 중심으로 한 빌트인 가전 제품의 특판 수요도 틈새시장으로 잡았다.
◇전망=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중국 기업들이 유의미한 성적을 내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이미 진출했던 기업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전략을 수립한다면 중장기적으로 전진기지를 구축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은 단기간에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보다 향후 글로벌 생활가전 시장의 강자는 중국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라며 “장기적으로 IT와 전자제품의 글로벌 테스트베드인 한국에 R&D 센터 구축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원석기자 stone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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