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의 최고정보책임자(CIO)인 변명섭 상무는 소위 ‘잘 나가는’ 외국계 컨설팅회사 출신이다. 컨설팅회사에 근무하던 2004년말 그는 동국제강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프로세스혁신(PI)을 위한 마스터플랜 결과물을 한번 검토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다른 프로젝트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지만 간곡한 부탁에 주말을 겸해 동국제강의 마스터플랜 결과물을 꼼꼼히 살펴봤다. 그리고 잘못된 점들을 솔직하게 지적했다.
그는 며칠 뒤 동국제강으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제자리 걸음만 하다 경쟁사들보다 뒤처진 동국제강의 IT를 회생시켜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어려운 과제가 많았지만 오히려 자신이 해야할 일이 명확했던 만큼 그는 주저없이 ‘예스’라고 답했다. 설립 50년 만에 동국제강의 첫 CIO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변 상무는 2005년 2월 동국제강 CIO로 임명된 이후 최근까지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변 상무가 CIO로 임명된 시점은 한국IBM이 7년간 동국제강에 제공해온 IT아웃소싱의 계약이 만료되는 해였다. 변 상무는 CIO 부임과 동시에 새로운 IT인프라를 갖추기 위한 PI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두 번의 혁신 프로젝트 진행=변 상무는 2005년 5월 경영혁신추진본부를 발족하고, 동국제강이 목표로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경영혁신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을 토대로 27개의 핵심 과제를 도출했다.
변 상무는 “5개월여 기간 동안 일반 직원부터 최고 경영진까지 왜 이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지, 했을 경우 납기일이 얼마나 단축되는지, 재고회전율이 얼마나 향상되는지 등을 수치화해 프로젝트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다”면서 “동국제강의 혼이 들어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며 그 당시의 열정을 전했다.
경영진들의 동의를 구한 그는 그해 9월 도피스(DOPIS, Dongkuk Process Innovation for Success)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동국제강의 핵심 시스템인 전사적자원관리(ERP), 통합생산관리시스템(MES), 생산계획 및 스케쥴링(ASP) 등을 동시에 재구축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동국제강은 2006년 12월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시스템을 가동했다. 이 기간 동안 한국IBM의 아웃소싱 서비스는 연장됐다.
4개 공장을 포괄하는 전사 영역에 걸쳐 대형 애플리케이션 3가지를 ‘그랜드 빅뱅’ 방식으로 재구축한 도피스 프로젝트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아웃소싱 서비스를 받으면서 써온 IBM 시스템을 모두 새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작업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변 상무는 시스템 가동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다른 공장들은 모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인천 공장의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하는 바람에 2주 넘게 공장에서 밤을 새워야만 했다”면서 “피를 말리는 순간이었기에 그 기간 동안에만 5㎏ 이상의 몸무게가 빠졌고, 두 번 다시 ‘빅뱅’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도피스 프로젝트에 이어 그는 당진공장 가동을 위한 데니스(DENIS, Dopis Expansion for Next Innovation Success) 프로젝트에 다시 착수했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올해 최대 과제였다. 동국제강의 차세대 먹거리를 생산해낼 충남 당진 후판공장의 가동에 앞서 기존 포항, 인천, 부산 공장에 적용해 사용하던 도피스 시스템을 당진 공장에 확대 적용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총 18개월에 거쳐 또 한번의 대대적인 시스템 고도화 작업을 추진했던 그는 지난달 24일 데니스 프로젝트를 최종 완료하고, 당진공장 가동에 한달 앞서 시스템을 오픈했다.
변 상무는 “실시간으로 처리되는 데이터량이 한달에 1억6000만건 정도”라며 “단순히 공장 하나 더 추가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시스템적으로는 ERP, MES, ASP 등 유기적으로 연결된 3개 영역간 인터페이스가 배 이상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 데니스 프로젝트를 통해 당진공장뿐 아니라 기존 공장까지 조업환경을 통합 관리할 수 있게 됐다”면서 “여기에 공장간 생산과 물류를 최적화하기 위한 체계도 수립했기 때문에 업무생산성을 크게 향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금융위기가 닥쳤지만 동국제강은 이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경영효율화를 위한 기반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룹 표준화·통합화에 주력=그는 동국제강의 CIO를 맡으면서 유니온스틸, 국제종합기계, 동국통운, 국제통운 등 동국제강그룹의 IT를 총괄하는 그룹 CIO까지 겸임하고 있다. 그룹 CIO로서 변 상무의 최대 과제는 표준화와 통합화를 통해 그룹 각 계열사의 IT 수준을 상향평준화하는 것이다.
변 상무는 “계열사별 IT의 인식과 수준이 너무나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에 제각각인 시스템을 표준화, 통합화하는 데 우선 초점을 뒀다”며 “첫 번째로 추진한 것이 그룹의 일 하는 방식을 표준화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CIO로 임명된 첫해 그룹 통합 그룹웨어를 구축했다. 단계적으로 통합 그룹웨어를 확대 적용해 현재는 모든 계열사가 동일한 그룹웨어를 쓰고 있다. 그는 이어 계열사별로 흩어져 있던 데이터센터를 통합했다. 일부 계열사의 경우 공장 한켠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낙후된 상황 속에서 시스템 운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전국 4개 지역에 통합 데이터센터를 두고, 멀티 백업체제를 구현했다. 또 300여종, 1000여대에 이르는 프린터들을 모두 없애고 특정 지역에 고성능 프린터를 두고 한국HP에서 운영하도록 했다. 프린터 관련 운영 비용을 20% 이상 절감했다.
그는 그룹계열사의 IT 인력들도 그룹 IT서비스회사인 DK유엔씨로 통합했다. 그는 IT 아웃소싱만으론 회사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HP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서버 사업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룹의 표준화와 통합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순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4300여대의 IP폰을 도입해 통신 비용도 대폭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동국제강과 그룹 CIO를 동시에 맡고 있지만 고민은 한가지다. IT와 경영혁신을 통해 그룹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향후 2∼3년 내 추진할 사업들도 모두 이와 연관돼 있다.
그는 동국제강에서 최근에 추진했던 경영혁신 프로젝트들을 토대로 유니온스틸, 국제종합기계, DK유아이엘 등 계열사에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경영혁신 1기를 빠른 시일내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제통운은 이미 추진했고, 국제종합기계가 현재 한창 진행 중이다. 그는 2년 내로 경영혁신 1기 프로젝트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CIO로서 그의 도전은 끝이 없어 보인다. 지난달 데니스 프로젝트를 완료한 데 이어 또 다시 경영혁신을 위한 후속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당분간 당진공장의 안정화 및 고도화에 집중하겠지만 내년부터는 새로 시작하는 브라질 고로 프로젝트와 인천제강 공장 설립에 맞춰 경쟁력있는 업무 시스템 구축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 동국제강 변명섭 상무는
1985년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카이스트 산업공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삼성전자 회전기사업부, HDD사업부 등을 거쳐 삼성자동차 전략정보팀 등 삼성그룹에서 9년 동안 경력을 쌓았다. 이후 컨설팅 업계로 옮겨와 아더앤더슨, KPMG컨설팅, 베어링포인트 등에서 일하면서 현대자동차 SCM, 삼성전기 SCM, SK그룹 10개 계열사 정보전략계획(ISP), 현대기아자동차 PI 마스터플랜 등 다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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