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SF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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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하면 흔히 우주와 외계를 떠올린다. 지구를 벗어나 미지의 우주공간을 탐험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외계생명들을 만나는 이야기. 무시무시한 괴물도 있지만 인류에게 우호적인 외계인도 나온다.

 이런 소재가 결코 고갈되지 않는 이유는 우주의 넓이가 끝 모를 만큼 광대해서다.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어림없을 만큼 압도적인 우주의 크기. 그러나 이 때문에 우리는 바로 곁에 있는 또 다른 우주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광대한 우주란 바로 우리의 사유, 정신의 우주다.

 서구 SF문학계는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새로운 우주에 눈을 떠 ‘뉴웨이브SF’라는 새로운 흐름을 탄생시켰다. 뉴웨이브SF의 지지자들은 그동안 바깥 우주(outer space)에만 매달려왔던 SF가 이제 안쪽 우주(inner space)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것만이 SF가 취할 바는 아니며 오히려 인간의 두뇌 속 정신세계를 탐색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프런티어라는 것이다. 이러한 뉴웨이브SF는 1960년대에 서구에 휘몰아친 히피나 반전 운동 등의 영향과 맞물려 매우 급진적인 양상을 나타냈다. 단순히 메시지나 내용 면에서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다양한 실험이 시도돼 나중에는 도저히 SF라고 볼 수 없는 작품들까지 발표됐다. SF작가가 SF잡지에 발표했기 때문에 SF문학으로 취급될 뿐 요즘의 잣대로 보면 주류문학과 전혀 다를 바 없거나 슬립스트림으로 간주될 만한 작품들이었다.

 뉴웨이브SF는 사실 뚜렷한 성과나 대표작을 남기지 못한 채 1980년대에 들어서 자연스럽게 소멸돼 버렸지만 SF문학계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주나 로봇, 시간여행 등과 결합한 모험담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던 SF가 질적인 도약을 이룩하며 주류문학과는 차별된 독자적인 미학과 깊이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제 21세기에 들어선 현재, SF문학계는 40여년 전의 뉴웨이브SF와 같은 새로운 혁신적 조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조심스레 해 본다. 21세기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과학기술의 발달 속도가 인간의 생물학적인 세대교체 속도를 완전히 추월한 시대다. 21세기에 10대 시절을 겪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그전의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마인드로 과학기술이라는 환경을 대한다. 그들에게 과학기술이란 몇 년을 주기로 환골탈태하며 늘 앞서 발전해가는 매우 역동적인 환경이다. 따라서 몇 십년 주기로 느리게 변화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상에 경이로움을 표현해왔던 기존의 SF도 이제는 다른 양상으로 창작될 것이다. 그 실마리야말로 바로 인간의 무한한 정신세계가 아닐까. 게다가 인간의 정신세계 자체도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힘입어 새로운 경지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85년에 도나 해러웨이가 ‘과학기술과 인간이 결합해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는 전망을 담은 ‘사이보그 선언’을 내놓은 것도 바로 그런 생각의 하나일 것이다.

 새로운 SF의 가능성은 테드 창과 같은 작가에게서 이미 감지되고 있다. 그의 작품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미래의 인류상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단순히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과학기술적 미래상뿐만 아니라 미래 인간의 사유와 정신세계가 어렴풋이 엿보인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인 한국의 SF문학도 이런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적 환경의 역동성, 특히 IT분야에서 한국만큼 숨 가쁜 행보를 보이는 곳도 드문 만큼 그런 변화의 에너지는 분명 머지않아 이 땅의 SF에도 반영될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cosmo@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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