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의 직계 자녀가 올 연말, 내년 초 재계 인사를 앞두고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30~40대의 젊은 층인 일부 총수 자녀의 발 빠른 경영 행보가 최근 부쩍 눈에 띄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주요 그룹 임원 인사에서 오너가(家) 차세대들이 대거 약진하게 되면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임원 배치의 ‘방향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주변의 관측이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과 현대차, LG, 두산, 한진그룹 등은 창업주 ‘3~4세’가 그룹 경영의 중심으로 이미 부상했거나, 그룹내 위치가 격상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이건희 전 회장의 뒤를 이을 ‘삼성의 차세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승진 여부는 삼성그룹뿐 아니라 재계 전체의 인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에버랜드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에 대한 무죄가 확정되고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등 소송 사건이 매듭됨에 따라 오너가의 발목을 잡아오던 큰 짐을 덜었다.
홀가분해진 삼성은 올해 이 전무의 부사장 승진을 통해 본격적인 ‘3세 경영’을 준비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 전무는 2001년 삼성전자 상무보로 임원진에 합류, 2년 뒤인 2003년에 상무가 됐고 4년 만인 2007년 1월 정기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앞서 올해 초 전무로 승진한 이 전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는 최근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에버랜드의 경영전략담당을 맡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여기에 동생인 제일모직 이서현 상무도 승진 연한이 됐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에서 ‘3세 중심’의 오너 경영 체제가 올 연말 또는 내년 초를 기점으로 틀을 갖출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재계 2위인 현대기아차그룹은 지난 8월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현대차 기획 및 영업 담당 부회장직에 승진, 발령한 것을 계기로 부친인 정몽구 회장의 경영 승계 구도가 구축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정 부회장은 입사 1년만인 2000년 현대차 이사, 2003년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사장을 거쳐 2005년 기아차 사장을 거쳐 10년 만에 부회장이 됐다. 정 부회장은 오는 24일 정 회장 없이 혼자 체코 공장 준공식에 참석, 광폭행보를 이어간다.
LG그룹 인사에서는 구본무 회장의 양아들로 LG전자의 과장으로 있는 ‘4세’ 광모씨가 관심의 대상이다.
이달 말 결혼을 앞둔 구 과장은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때 재무담당을 한 구 과장은 결혼과 함께 올 연말 기획파트나 해외 영업파트에 몸담아 ‘현장 경영 수업’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업계 주변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구 과장은 ㈜LG 주식을 차곡차곡 매입, 구 회장과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에 이어 4대 주주에 올라있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아들인 윤홍씨는 올 2월 GS건설 차장으로 이미 승진했다. 윤홍씨는 앞서 작년 6월 미국 워싱턴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명예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상무가 이미 그룹 전략경영본부를 맡으면서 임원진에 합류한 데 이어, 박 명예회장의 형인 고(故) 박정구 회장의 아들 박철완 부장도 이번에 임원 승진이 점쳐진다.
금호아시아나는 올해 박삼구-찬구 형제가 경영 갈등을 빚은 후유증이 남아 있어 전문 경영인 수혈도 대폭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상무의 승진 가능성이 엿보인다. 조 상무는 최고경영자(CEO) 수업에 이미 돌입했고, 장녀인 조현아 씨도 지난 4월 칼호텔네트워크 대표를 맡아 CEO 대열에 합류했다.
두산그룹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이 최고 경영자에 오르면서 ‘4세 경영시대’로 접어든 가운데, 앞으로 인사에서 형제 집안간 경영 역할 분담 구도를 더욱 확실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진중공업에서도 조남호 회장의 아들이자 미국 변호사 조원국 상무가 다가올 인사에서 승진의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상황이다.
효성그룹은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 중 큰아들인 현준씨가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격상될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여전히 일에 열정을 과시하고 있지만 조 회장이 74세로 고령인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외부 활동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현준씨의 경영 수업이 진행돼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현준 씨의 위치가 격상되면 부사장과 전무를 각각 맡은 현문.현상씨는 사장급으로 한 단계 순차적으로 올라갈 수 도 있다. 대림그룹은 이준용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 부사장이 사장 후보로 거론된다. 이 부사장은 2005년 7월에 부사장이 된 뒤 작년 승진 연한이 됐지만 사장에 오르지는 못했다. 한편, 일본에서 유학 중인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아들 남호씨와 올 연말 공군 복무를 마치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 동관씨의 거취도 관심의 대상이다. 대기업 3∼4세의 승진 인사는 경기가 어려웠던 작년과 달리 올해 경기가 회복되면서 그룹 실적도 개선돼 무엇보다 좋은 여건이 갖춰졌다는 평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 회복과 오너 경영으로의 회귀 움직임 등 경제계 안팎의 사정을 고려하면 올 연말 재계 인사는 지난 10여 년 이래 어느 때보다 큰 변화와 새로운 시도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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