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
이 말은 여러 분야에서 다각적으로 인용된다. 하지만 근자에는 이 말의 뜻이 더 원초적인 의미로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다. 즉 ‘자연환경’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한 설명으로 충분하리라 본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기상이변의 주범으로 지구온난화가 주목받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원인이 지나친 산업화와 오존층 파괴라는 지적이 정설로 굳어가기 때문이다.
하나의 행성에 생명이 탄생하고 인간 수준으로 복잡하게 진화해 문명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엄청난 기적이다. 이 발전이 계속돼나가고 인류를 단종시키지 않으려면 그 바탕이 됐던 환경이 극단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무엇보다도 우선순위가 높은 일이기도 하다.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성급하게 굴거나 ‘친환경’이나 ‘녹색’이라는 말이 붙은 것을 무조건 받아들여도 좋은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집에 작은 화재가 빈발할 때 무조건 소화장비부터 들여놓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왜 위험이 그리 높은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먼저일까. 물론 당장 눈앞에 불이 보인다면 끄는 것이 우선이지만 이유를 확실히 밝히지 않는 한 같은 사고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게다가 위기 상황을 빌미삼아 그저 이름뿐인 소화기만 팔아먹고 실제로는 화재위험을 더 높이는 조악한 상인이 있는 건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는 기본적인 선입견부터 재고하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의 우리는 선택받고 완벽한 상태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생태계라는 시스템의 일부이자 부속품으로서 꾸준히 살고 진화하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른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역대 최고의 장편 SF로 손꼽는 프랭크 허버트의 ‘듄(Dune)’을 보자. 듄에서 주무대가 되는 것은 사막행성 아라키스다. 아라키스에는 ‘프레맨’이라는 토착민들이 살고 있다. 아라키스에 물이 극도로 부족하다 보니 프레맨들의 생활방식도 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수분을 남에게 건네기 때문에) 침뱉기를 영예로운 행위로 받아들이고 죽은 자의 몸에서 수분을 회수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그뿐 아니라 진화를 거쳐 혈액의 응고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우리의 육체가 탄소기반이며 산소를 호흡하는 것, 식물들이 이산화탄소를 이용하고 산소를 내뿜는 것, 인간과 각종 동물들의 생체시계 주기 등은 모두 지구(와 태양과 달)라는 특별한 생태계의 일부이자 결과다.
우리는 여전히 무지하다. 지구 세차 운동의 진폭이 0.5도 달라지면 대류와 일조량과 반사량이 어떻게 바뀔지, 달과 지구의 거리가 1㎞ 멀어지면 조석간만에 어떤 변화가 오고 그에 따라 해수온도와 조류가 어떻게 바뀔지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과학자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을 의인화하고 무조건적인 회귀를 내세우는 것이 답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자는 말은 결국 아무 방법도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별하지 않지만 하찮지도 않다. 진정으로 삶의 기본 터전인 지구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거시 생태계의 관점에서 인간을 필수 요소로 넣고 환경문제를 보는 시각이 가장 먼저 필요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존재를 위협하는 진짜 위험요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sophidi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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