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함은 멸시를 낳는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늘 곁에서 함께 해서인지 그 소중함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내 곁에 있는 아내보다 지나가는 옆집 여자가 더 예뻐 보이고 내가 다니는 회사보다 동창이 옮긴 회사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오래 근무한 경력사원이 회사를 더 까칠하게 평가한다.
회사를 알 만큼 알고, 실망한 기억 때문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다. 익숙한 지금을 변화시키는 것도 귀찮고, 일 벌려봐야 골치 아파질까봐 짜증을 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구차한 명분으로 싫지만 버텨야 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밥줄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묻어가는 게 상책이라는 불문율도 몸에 뱄다. 혁명을 일으키려는 신입사원도 기존을 부정하고 위협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고, 무기력에 나른해진 경력사원도 탐탁지는 않다.
이쯤 되면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거다. 의욕 상실은 크나큰 형벌이다. 바쁘지 않은데 바쁜 척하고, 힘들지 않은데 힘든 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해본 사람은 안다. 괜시리 책상에 서류를 늘어놓고 관심없는 지루함을 감추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고 노동이다. 희생과 헌신으로 올인하는 것 못지않게 요령과 눈치로 버티는 사람도 힘이 든다. 당분간은 편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매너리즘이 돌이킬 수 없는 습관으로 굳어버리면 무력감이 돼 부메랑처럼 스스로를 친다. 녹슬어 사라질 바에는 닳아 없어지자.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서 녹스는 것보다 혼신을 다해 열정을 쏟다가 닳아 빠지는 게 더 당당하고 떳떳하다. 녹스는 것은 추하고 구차하지만 닳는 것은 매끈하고 반짝인다. 녹슬어서 삐걱거릴 바에는 닳아서 헐거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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