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시어머님이 반복해 묻는다. “너는 누구냐?” 14년을 함께 산 며느리를 못 알아보는 것이 황당하고 허망하더니 나중엔 짜증이 난다. “어머니 막내 며느리요, 주희 엄마요”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 은근슬쩍 자리를 피한다. 커가는 아들이 “저건 뭐야?”를 반복해 질문할 때는 10번을 해도 신기하고 대견해서 지치지 않고 대답했었는데 부모에겐 몇 번도 못 견디고 귀찮다.
부모는 자녀 키울 때 업고 안고 치우고 씻기고 다 했는데 자녀는 부모 모실 때 여차하면 남의 손을 빌리려 든다. 역시 자녀가 하는 사랑은 부모가 주는 사랑을 못 이긴다. 무엇이든 자식 먼저 주고 어떻게든 자녀 편하게 하고 싶은 심정을 부모에게 갚아드리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 CF광고 중에 “우리는 괜찮다, 옆집 가서 TV 보면 된다”는 카피가 가슴을 울린다. 여러 가지로 불편하지만 자녀들 걱정 안 시키려고 좋게 말하는 부모의 실상이 영상통화 앞에서는 다 드러난다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처럼 실제 상황에서도 부모의 불편이 그대로 드러나면 좋겠건만 우리가 통역해서 듣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다. “버스 타고 지하철 두 번 갈아타면 된다. 걱정마라. 혼자 갈께”라는 말은 “무릎 아프니까 좀 데리러 와달라”는 말씀이다. “딸기는 요즘 비싸냐?”라는 말은 딸기가 먹고 싶다는 것임을 헤아려야 한다. “열무김치 담가놨는데”라는 말은 자식이 미치도록 보고싶다는 말이다. “어서 빨리 죽어야지”라는 말은 “삶의 의미와 재미를 갖고 싶다”는 뜻이다. 이런 통역능력은 사랑과 관심의 깊이에 따라 적중률이 높아진다. 어른은 한 번 되지만 아이는 두 번 된다는 말이 있다. 나이 들면 다시 아이처럼 돌봄이 필요한데 자녀를 키우는 반의 반만큼도 부모에겐 신경을 못 쓴다. 옷은 사드릴 수 있고 집은 꾸며드리지만 사랑과 관심을 채우기는 어렵다. 자식은 어려서 부모의 발을 밟더니, 커서는 부모의 마음을 밟더라는 옛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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