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50년 동안 이어온 그룹 경영 체제를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로 바꾸고, 총수로서 카리스마를 보여준 이건희 전 회장이 사원증을 공식 반납해 ’야인(野人)’이 된 지 7월1일로 만 1년이 된다.
삼성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혐의 등에 대한 이 전 회장의 재판이 본격화하던 작년 6월25일 이 전 회장이 7월1일 자로 퇴진하고 그룹 전략기획실을 해체한다는 내용의 쇄신안을 발표했다.
1959년 삼성 이병철 선대회장의 비서실로 출발한 전략기획실은 ‘황제경영’의 친위대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삼성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이끈 ’브레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함께 받았다.
이 회장의 퇴진 이후 삼성은 사장단협의회를 가동하면서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로 연결됐던 삼각편대에서 두 날개가 떨어져 나가고, 계열사가 각개약진하는 식으로 1년을 지내왔다.
성과 면에서 보면 일단 이 같은 실험은 합격점을 받았다.
지난해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4분기에 연결기준 7천400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지만 올 1분기 4천7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분기에는 반도체를 포함한 전 부문에서 흑자를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영업이익 규모도 1조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른 계열사들도 올 상반기 생산성 격려금(PI) 지급을 위한 평가에서 5개사를 제외하고 모두 최고 등급인 A를 받는 등 시장 상황에 비해 괜찮은 실적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경영권이 걸려 있던 ’에버랜드 사건’이 지난 5월29일 대법원에서 사실상 무죄판결로 마무리된 것도 총수 퇴진이라는 강수를 두며 고개를 숙였던 삼성의 깊은 고민과 시름을 덜어주었다.
그러나 삼성은 에버랜드 사건, X-파일 사건 및 특검 수사를 거치고, 그 여파로 그룹 전략기획실이 분해된 이후 구심점을 잃으면서 과감하게 전략적인 투자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주력사인 삼성전자가 올해 투자 규모를 확정하지 못한 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등 그룹 사령탑 해체에 따른 후유증이 감지되고 있다.
삼성은 또 2007년 10월 5~10년을 내다보는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지만 2년이 돼가도록 구체적인 투자 규모나 방향을 제시하는 후속 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룹 내 최고 의사협의 기구로 투자조정위원회와 브랜드관리위원회를 거느린 사장단협의회도 출범 1년 동안 그룹의 경영 방침에 관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의견을 나누고 각계 전문가의 강연을 듣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의 현 시스템이 실질적인 그룹 체제를 유지하면서 신수종 사업 발굴과 대규모 투자 결정 등 전략적인 사업 방향을 제시하는 데는 아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전 회장이 퇴진했지만, 삼성이 그간 추구해온 경영 가치와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분석과 궤를 같이한다.
삼성은 이달 4일 사내에 방송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16년 전 이 전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알려진 ’신경영’ 가치를 재차 강조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삼성은 이 전 회장이 1993년 6월7일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모아 놓고 ’이대로 가면 망한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대대적인 혁신을 주문한 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재계에서는 아직 이 전 회장이 피고인으로 돼 있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고, 쇄신안의 핵심인 지주회사 전환과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선 문제가 남아 있어 삼성이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의 퇴진만으로도 삼성은 큰 변화를 겪었다”며 “경영 외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만큼 지금은 조심스럽게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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