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기술분야 연구개발 방향 설정에는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연구자 중심으로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한국연구재단 출범에 맞춰 우리나라를 찾은 위르겐 로스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는 2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위스는 15년 전에 (정부 주도의) 톱다운 방식 연구개발 과제를 도입했지만, 곧바로 포기했다”며 “톱다운 방식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스 교수에 따르면 스위스 연방정부는 약 15년 전 ‘삶의 질’이라는 주제로 톱다운 방식의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추진되던 연구는 곧바로 실패로 결론났고, 이후 톱다운 방식을 배제하고 있다고 했다.
로스 교수는 “삶의 질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데, 다시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며 “(한국에) 미안한 이야기지만 예산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래서 금방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로스 교수는 “스위스에서 연구개발 과제를 선정할 때 적용되는 한가지 룰은 바텀업 방식”이라며 “과학자들이 낸 제안서를 과학자들이 평가하고, 서로 다른 평가자로부터 3번에 걸쳐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로스 교수의 말은 과학 발전단계와 과학계 필요에 의한 연구개발이 아닌 정치적 목적의 연구개발 추진은 결국 실패한다는 것. 이는 정부 주도에 따라 지난해부터 모든 과학계가 녹색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로 출범한 한국연구재단도 톱다운 방식의 국책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로스 교수는 과학 대중화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10년 전 연방정부에서 유전과 관련 연구를 중단할 것이냐를 두고 찬반투표를 했다”면서 “이때 일부 과학자들이 적극 반대했는데, 이 과정에서 비전문가인 일반 국민에게도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로스 교수는 “국민들에게 과학자들이 세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주고, 젊은이들이 이공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부여도 된다”며 “과학이 악명높은 상아탑 속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며, 국민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