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외화 내빈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 등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지만 반도체 공정 라인을 들여다보면 장비·재료는 외산 간판 일색이다.
메모리 가격이 급락한 상황에서 이러한 수입 의존도는 소자 기업의 원가 상승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기업의 꾸준한 기술 개발 노력 덕분에 국산화에 성공한 전 공정 장비 조차 면밀하게 제품 내부를 뜯어보면 주요 부품은 외산이 차지, 부품 내재화율이 50∼60%에 머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세계 1위인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벚꽃(일본), 튤립(미국) 등 외국 국적의 꽃으로 치장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진정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반도체 장비 관련 부분품·부품 등을 시급하게 내재화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일본·미국·유럽 등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는 부품을 선별·집중 투자해 내재화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소자 기업의 국산 제품 사용 의지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장비·부품의 국산화 거북이 걸음=화학증착장비(CVD)·에처(etcher) 등 우리나라 전 공정 장비는 핵심 부품이 국산화되지 않은 탓에 후공정 장비에 비해 전반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하다. CVD·에처 등 전 공정 장비 핵심 부분품인 ‘질화알루미늄(AlN) 히터’를 국내 기업들은 미국 CRC 등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다. AlN 히터는 CVD 생산 원가 재료의 25%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고부가 제품이지만 국산품이 없어 불가피하게 외산을 사용, 국산 장비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특히 반도체 소자의 선폭이 40나노 이하로 줄어듦에 따라 증착·식각 공정에서 신속한 승온·냉각과 더불어 웨이퍼 온도를 위치에 따라 균일하게 제어하는 AlN 히터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국산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CVD에서 가스를 웨이퍼에 균일한 두께로 분산·증착하는 샤워 헤드도 국산 제품이 없다. 설령 AlN 히터와 샤워 헤드를 국산화해도 이들 부품의 핵심 소재는 수입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반도체 장비는 부품에서 소재에 이르기까지 취약한 산업 구조에 놓여 있다.
또 드라이 에처 장비에서 플라즈마를 형성하는 핵심 부분품인 ’벌크(Bulk) 실리콘카바이드(SiC)전극’은 일본 TCK 등 외산이 장악하고 있다. SiC 전극을 고정하는 ‘링’ 같은 기구물 조차 외산을 사용하고 있다.
전 공정 장비에서 체임버와 진공펌프를 연결하는 자동기능 밸브 시장도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다. 자동 기능 밸브는 진공펌프 고장 시 기압 차이에 의해 체임버 내로 이물질이 들어가 웨이퍼를 오염시키는 사고를 사전 감지한 후 자동으로 펌프와 체임버 사이를 차단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밖에 칩의 불량 유무를 검사하는 소모품인 멤스카드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마이크로프로브헤드(MPH)’도 일본 교세라·NTK에 의존하는 등 국내 반도체 후방 산업 경쟁력은 취약하다.
◇반도체 후방 산업, 선진국 부분품 독식 견제=장비·부품의 취약한 산업 구조는 장비 국산화율 개선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율은 21.2%다. 반도체 소자 기업이 사용하는 10대 장비 중 8대는 외산인 셈이다. 특히 지난해 조립 공정 장비의 국산화율은 29%에서 40.1%, 검사 공정 장비의 국산화율은 26.5%에서 41.5%로 각각 증가, 후공정 장비 국산화율은 꾸준히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전 공정 장비의 국산화율은 전년 10.8%에 비해 11.2%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후공정 장비가 가격에 의해 구매경쟁력이 결정되는 반면에 전 공정 장비는 부품 성능이 구매 의사를 결정하는 첨단 제품이지만 부품의 기술력 격차가 큰 탓에 미·일·유럽 선진국에 안방 시장을 고스란히 내주고 있다. 미국·일본·유럽의 반도체 장비 기업이 세계 톱 10 자리를 휩쓸고 있다.
장비와 부품 업체들은 상호 협력, 개발 대상 품목을 선정해 국산화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박막공정을 위한 전공정 장비 관련 진공펌프·세라믹 정전척·진공밸브·SiC 튜브 및 보트 등의 주요 부품들이 처음 국산화돼 삼성·하이닉스 등의 생산라인에 작년부터 공급,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비록 이들 부품의 연간 총매출이 선진국 노광장비 1대(대당 300억∼400억원) 값 이상을 넘지 못하지만 주요 부분품·부품의 상용화에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기업은 고도 정밀 기술을 요하는 AlN히터·벌크 SiC전극 등의 핵심 부품 개발도 올 하반기 완료, 선진 부분품 기업 견제에 나설 계획이다.
이영곤 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은 ”고객이 신뢰성을 검증한 핵심 부품만을 요구, 내재화 비율을 끌어올리기 힘들지만 저렴한 인건비와 우수한 연구인력을 토대로 소자·장비·부품 기업이 협력해 주요 부품 개발에 집중한다면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기대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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