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으로 무너지는 `신흥 IT강국` 이스라엘

 이스라엘 텔아비브 외곽에 사는 모티 아브라하미(36)는 성공한 이스라엘 IT 전문가의 전형이다.

 군대에서 사이버전쟁 첩보 전문가로 복무했던 그는 이스라엘의 MIT격인 이스라엘 공대를 졸업한 뒤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베리폰’에 취직했다. 지난 2007년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위치한 신생 소프트웨어 기업의 부사장으로 승진,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달콤한 꿈’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지난달 그는 자동차 학교에 등록했다. 이달부터 해고자들을 모아 자동차 임대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최근 10년간 ‘중동의 화약고’에서 ‘신흥 IT 강국’으로 거듭난 이스라엘에는 지금 그와 비슷한 사연을 지닌 엔지니어들이 넘쳐난다.

 ◇GDP 15% 책임지는 IT=전세계를 강타한 불황이 이스라엘을 비켜갈 리 없다. 특히 IT 산업의 위축은 이스라엘 전체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IT 산업의 성장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스라엘의 첨단 기술 분야 종사자는 전체 노동 인력의 7%로, 이들이 이스라엘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책임진다. 이스라엘 2000억달러 경제에서 IT 부문 매출은 255억달러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IT 종사자 1인이 타 산업 분야 종사자 6명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한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10여년간 100개가 넘는 이스라엘 기업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다. 미국·중국 다음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방화벽 소프트웨어와 USB 드라이브 제품 등에서 강세를 보여왔다.

 ◇과거의 영화는 어디로=이처럼 IT를 발판으로 전쟁의 상흔을 씻어낸 이스라엘이 글로벌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혼란에 빠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IT 제품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이스라엘이 받은 충격은 예상보다 크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제조업연합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소규모 IT 제품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47%를 차지한다.

 하지만 최근 북미·유럽·아시아 등 이스라엘의 주요 IT 고객들이 등을 돌리면서 비단 IT 분야뿐 아니라 전체 국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해 10월 이후 IT 분야 전체 종사자의 6∼8%에 해당하는 8000여 명이 직장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현지 IT 기업들은 매일 정리 해고 방안을 내놓는 실정이다.

 IDC는 이스라엘의 IT 수출 수요가 최근 10∼15% 가량 급감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올해 이 부문에서만 1만명이 넘는 인력이 해고당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지난달 이스라엘 전체 해고자가 2만72명임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숫자다.

 모쉐 즈비란 텔아비브 대학 교수는 “IT분야의 침체가 전체 이스라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IT 등지는 인재들=무엇보다 이스라엘 IT 산업의 핵심 동력인 우수 인재들이 IT를 등지고 있어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IT 기업에서 쫓겨난 다수 실직자들은 새로운 직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이스라엘 교육부가 최근 대졸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개설한 교육 분야 취업 강좌에 등록한 수강생 2200명 가운데 1200명 이상이 IT 관련 인력이다.

 이스라엘의 IT 전문가들은 연구 개발 능력이 뛰어난 IT 영재와 수완이 탁월한 사업가들을 다수 배출했던 이스라엘의 IT 산업계가 인력 유출만은 막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모티 아브라하미는 연봉 50% 삭감 이후 직접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심했지만 외부 자금 조달에 실패해 결국 새로운 직업을 선택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첨단 기술 산업에 더 이상 미래는 없다”고 호소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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