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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 생산업체가 많이 몰려 있는 안산·반월 국가산업단지 내에 요즘 단연 눈에 띄는 기업이 있다. 바로 에스아이플렉스다.
PCB 중에서도 휘거나 구부려지는 연성PCB(FPCB)를 주력 생산하는 에스아이플렉스는 요즘 신규 직원을 뽑고 있다.
다른 회사들이 인력 감축과 투자 축소에 진땀을 빼는 사이 조용하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에도 아랑곳없이 4∼5년 안에 매출 1조원짜리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도 더 크게 영글고 있다.
지난 2월에 230억원의 매출을 낸 에스아이플렉스는 지난달 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간으로는 올해 3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10%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에스아이플렉스가 이렇게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지난 2007년 삼성전기와 손잡은 것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물론 에스아이플렉스는 국내뿐 아니라 일본 소니, 캐논, 히타치, 엡슨과 미국 시냅틱스, 대만 리테온 등 굵직한 공급 루트를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기는 단순히 공급업체 하나가 더 늘어난 ‘그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FPCB 생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도금, 에칭기술을 자공정에 완벽히 구현한 탁월한 기술뿐 아니라 카메라폰의 급속한 고화질 추세에 맞춰 미세패턴기술까지 갖고 있던 그야말로 ‘보석’ 같은 능력이 삼성전기를 만나 카메라모듈 제품화로 ‘꽃’을 피운 것이다.
원우연 에스아이플렉스 사장은 “삼성전기는 우리의 기술을 상품화하고, 고부가가치화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해 준 파트너”라며 “상생협력이 단순한 기술지원이나 제품 공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협업과 생산적용, 시장확대로 이어지는 사이클에 함께 뛰는 동반자로 승화된 모델”이라고 말했다.
에스아이플렉스는 지난 2007년 2월에 삼성전기의 협력사 기술협업 공간인 윈윈플라자에 입주했다. 삼성전기와 협력사들의 공동 공간인 윈윈플라자는 단순히 업무협의를 신속하게 진행하거나, 납품을 제때하기 위해 운영되는 곳이 아니다.
삼성전기 연구원들이 설계한 PCB가 생산공정에 적정한지, 또 도금, 에칭기술상 회로설계를 어떻게 바꾸는 것이 효율적인지가 실시간으로 논의된다. 또 에스아이플렉스가 닿지 못한 기술 밖의 문제에는 기술지도 및 연구지원이 이뤄진다.
이 같은 윈윈플라자를 놓고 원 사장은 “단순히 기술을 교류하고, 협조하는 공간이 아니다”며 “그곳은 우리 스스로 해결점을 찾고 내재화하는 ‘솔루션센터’의 의미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원 사장은 “예전엔 대기업이 던져준 설계도면 대로 무작정 생산에 돌입해 수율이 안 나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납품업체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며 “그러나 지금은 윈윈플라자에서 선공정으로 수율과 생산성 점검을 끝내고, 본격 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런 걱정이 없다”고 말한다.
수율이 나오니 원가구조를 맞출수 있고, 연달아 납기까지 맞출 수 있어 삼성전기의 완제품 납기도 제때 이뤄지는 것이다.
삼성전기와 에스아이플렉스는 그야말로 개발, 양산, 마케팅까지 삼박자를 함께 맞추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입주한 지 2년이 흐른 지금, 에스아이플렉스는 삼성전기에 카메라모듈용 FPCB만 월 약 1억2000만개, 금액으로는 80억원 규모를 공급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오늘도 상생협력이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도약시킨 성공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안산(경기도)=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원우연 에스아이플렉스 사장이 말하는 상생협력
“군포에 우리 자체 연구개발(R&D) 인력 100명이 가동되고 있지만, 난관에 부딪힐 때 곧바로 삼성전기 윈윈플라자로 달려갑니다. 그래서 우린 어떤 구조의 제품을 수주해와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400여종의 PCB 제품군을 생산, 공급하고 있는 에스아이플렉스의 원우연 사장(61)이 유독 삼성전기와의 파트너십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다.
구매기업의 요구에 맞는 빠른 기술 변화와 순발력 있는 대응이 삼성전기와의 전략적인 기술협업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삼성전자 생산기술팀장을 지내다 지난 88년 에스아이플렉스를 창업한 원 사장은 중소기업 창업과 성장, 글로벌화에 대한 정확한 시나리오와 식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상생협력에도 남다른 견해를 폈다.
“중소기업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키우는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그물처럼 엮여 있는 산업 구조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납품 수요 없이 도저히 자력 성장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대기업의 비즈니스(업종)를 키워서 그에 연관된 중소기업까지 키워가는 방향이 맞다고 봅니다.”
물론, 여기에는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기술력을 높이고, 제품 공급 체인을 글로벌화하려는 자체적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에스아이플렉스는 벌써 그 8부 능선은 넘었다. 대기업의 특정 산업 지원은 거센 사회적 저항을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이 있어야만 대기업 지원도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대기업의 매출과 시장 점유율을 지금보다 3∼4배 높이려면 협력업체가 30∼40배 강해져야 합니다. 비즈니스 디벨로핑(사업 창출, 개발) 및 펀더멘털도 단단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다음에 세계시장 이해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 조건을 갖췄을 때만 우리 산업구조에 맞는 대·중소기업의 동반 성장과 중견기업 도약이 가능해집니다.”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선 에스아이플렉스는 올해 전 세계 PCB 시장 3위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97년 중국 생산 거점으로 설립한 하이저우법인에 이어, 2000년 위해 공장, 지난해 톈진 공장까지 풀가동되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도 크고 넓어졌다. 에스아이플렉스의 대응도 강해졌다.
“상생협력은 자기 회사를 가장 낮은 ‘바다’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면 고객(협력사)은 ‘강’이 되어 우리에게로 옵니다.”
안산=이진호기자
◆삼성전기의 상생전략
“각기 주력 제품을 가진 중소기업 같은 사업부 여러 개가 뭉쳐 한 회사를 이룬 삼성전기는 중소기업과 가장 친밀한 기업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설령 적자가 나더라도 협력회사 지원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삼성전기는 중소기업과 상생협력을 철학처럼 실천하고 있다. 매년 정부·민간 차원 상생협력 시상이나, 모범사례에서 삼성전기는 거의 매번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린다.
수원 삼성전기 본사 정문 앞 건물에는 상생협력 실천의 상징이자 심장부인 윈윈플라자가 가동 중이다.
본관 정문 앞이 보안 검문과 출입감시로 삼엄한 것과 달리 윈윈플라자 건물은 은행과 병원 등 출입이 자유로웠다. 본부 사업장 내에 있던 윈윈플라자를 외부 건물로 이전한 것도 협력사들의 접근성과 편리성을 고려한 조치다.
윈윈플라자는 2004년 삼성전기가 상생경영지침을 만들고, 상생담당 조직을 가동하면서 출범했고,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으로 외연과 실적을 키워가고 있다.
이성환 삼성전기 구매기획팀 차장은 “초기 9개사에 불과했던 윈윈플라자 입주 기업은 현재 19개사로 늘어나 있다. 협력 출발점은 각기 다르더라도 입주기업의 연평균 매출성장률은 30∼50%에 달하고, 일부 200% 이상을 내는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기는 협력회사의 지원은 두 가지 축으로 전개하고 있다. 우선 1년간 집중지도 프로그램으로 삼성전기의 연구원 또는 기술컨설턴트가 아예 협력회사에 상주하면서 협력사의 기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또 하나는 ‘테마지도’로 기술애로 발생 즉시 3개월 이내에 집중적인 기술 지원으로 난관을 극복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이 차장은 “지난 2005년부터 추진해 온 국책과제 수행 지원 활동으로는 총 57개 기업에 혜택이 돌아갔고, 그 경제적인 효과는 158억원에 달했다”며 “기술협업 활동을 기획하는 데서부터 최종 자료 제출까지 모든 협업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기는 지난2004년부터 지난해 9월 3일까지 전개해온 1기 상생협력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 아래, 곧바로 2기 프로그램에 돌입했다. 1기가 공정기술 전수 및 지원에 집중됐다면, 앞으로 2기는 엔지니어링(설계기술) 컨설팅에 좀 더 힘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마케팅 컨설팅까지 시장성과까지 연결해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방향을 놓고 이 차장은 “협력회사의 볼륨을 얼마나 키우는지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기의 가동률은 지난 2월까진 많이 안 좋았으나 지난달 물량은 경기 악화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상태다. 가동률로는 100%를 이미 넘어선 라인도 일부 있다.
상생협력 노력으로 현실 위기는 ‘짧게’ 만들고, 그 다음 기회는 ‘크게’ 만들고 있었다.
수원(경기)=이진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