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생존 시험, 공존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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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 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 터뜨리며 만족해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유대교 경전 ‘미드라시’에 나온 일화를 인용해 랜터 윌슨 스미스가 쓴 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의 일부다. 힘들거나 지칠 때 되뇌어보는 말인데 이 구절이 지금처럼 의미심장하게 읽힌 적도 없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기업이든, 가계든 생존이 첫 번째 화두가 됐다. 다들 살아남기 위해 죽기살기로 뛰고 있다. 임금 삭감, 반납이 유행처럼 번지고, 직장인들은 구조조정의 두려움 때문에 워크홀릭으로 변해간다. 얼마 전 직장인들의 업무시간 외 컴퓨터 사용비율이 37%로 1년 전보다 3배 이상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생존 시험을 치르고 있다. 기왕 치르는 시험, 벼락치기보다는 제대로 공부하면 어떨까. 나 혼자, 우리 회사만 겪는 고통이 아닌 바에야 좀 느긋하게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대니얼 길버트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 “워낙 큰 고통은 그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심리적 면역체계를 작동시키기 때문에 경미한 고통보다 덜 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물 경기의 어려움은 객관적인 현실이지만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그 충격의 정도, 교훈의 수준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방법론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나 일자리를 나누는 잡 셰어링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어려운 와중에도 신규 채용을 늘리거나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기업들도 나온다. 이런저런 좋은 취지의 캠페인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위기가 심각하다 보니 사회적 치유 체계도 빨리 작동하는 셈이다.

 이 거대한 생존 시험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 생태계의 중심에 서 있는 대기업인 듯하다. 어려울 때 가장 고통받는 쪽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다. 대기업이 배고프면 중소기업은 굶은 지 오래다. 이미 여러 번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은 대기업들은 이 끔찍한 경제위기가 지나도 건재할 것이다. 그러나 협력업체가 도산하고, 중소기업 기반이 무너지고, 생태계가 어려워진다면 나홀로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요타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경쟁은 브랜드 경쟁이 아니라 협력 부품업체와의 밸류체인 경쟁력이라는 어느 전문가의 지적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대기업이 위기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가 전체 시험 결과의 품질을 좌우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적자에 당황스럽겠지만 70년 안팎의 그룹사에서 지금처럼 힘든 시기가 한두 번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100년 기업을 바라보며 좀 더 큰 그림을 그렸으면 한다. 최근 통신·인터넷 대기업들은 새 CEO를 맞아들였다.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관리경영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더불어 생태계의 중심 역할도 튼실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같이 어려울 때엔 조금 못해도 흠이 안 된다. 주주들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생존 시험을 공존 시험으로 바꿔버리면 미처 알지 못한 해답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경영 안 해봤으면 말을 마세요∼’ 이런 대답이 돌아올까.

 조인혜 미래기술연구센터(ETRC) 팀장 ihch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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