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 BIZ+] KRX 차세대시스템 경쟁력 대해부

 KRX 차세대 시스템의 가동 날짜가 연기된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국가적인 금융 인프라가 탄생하는만큼 내실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드러난 미흡했던 진행 과정들이 단순히 오픈 일정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신뢰도와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 업계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달 23일 오픈도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KRX의 차세대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것. KRX는 이제 차세대 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용으로 선진 거래소와 견줄 만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함과 동시에 프로젝트 과정에서 잃은 신뢰도 회복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감리 업체가 없었다=KRX의 이번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는 제3의 감리업체가 없다. 물론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만 하더라도 법적인 의미에서 ‘공공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감리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KRX를 주축으로 70여개가 넘는 증권사가 연계돼 진행되는 대규모 통합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감리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여러 기업이 연계되면서 2인 3각 게임과 같은 프로젝트였고, 구축 기간 또한 장기전이었기 때문에 감리 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됐는데, 왜 감리 작업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감리 작업을 진행했다면 프로젝트 진행에 다소 까다로운 점이 있었겠지만 이렇게까지 미흡하게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창희 KRX IT통합추진단 부장은 “감리 업체들이라고 해도 거래소 업무 내용을 잘 모르는 상황이고, 감리 부문을 제도적인 것으로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오픈 연기에 따른 후유증 우려=KRX 차세대 시스템이 두 달 정도 오픈 날짜가 연기되면서 증권사들의 피해도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1월 28일 오픈 예정이었지만 3월 23일로 두 달 연기되면서 증권사별로 추진하던 다양한 개발 작업의 추진 일정에 차질이 빚어진 것.

 특히 KRX 차세대 프로젝트 일정에 맞춰 자체적으로 차세대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던 현대증권과 대신증권은 피해액이 수십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 인력비용만을 따졌을 때 산출된 것이고, 실제 프로젝트 일정 차질에 따른 부수적인 개발 작업들까지 따진다면, 그보다도 더 많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관련 증권사 CIO는 “차세대 개발 인력들이 반 이상 빠졌음에도 테스트 기간 두 달여 동안 상주해 있어야 하는 인력들만 계산해도 20억원이 넘는다”며 “개발 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체적으로 비용을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어 골칫거리가 됐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형 증권사 CIO는 대부분 2년 넘게 일정 조정을 해오면서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어떻게 오픈 예정 3주 전에 일정이 바뀌는지 당황스럽다는 의견이다. 또 오픈 일정이 연기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사전에 전혀 의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던 다른 개발 일정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차세대 프로젝트과 견줄 만한 규모의 개발 작업은 아니지만 퇴직연금시스템을 비롯해 자금세탁방지(AML), 리스크관리시스템 등이 줄줄이 대기 상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KRX만의 책임으로 전가할 상황은 아니다. 증권사 한곳이라도 준비가 완료되지 않으면 오픈이 힘들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불만을 드러내긴 난처한 상황이다.

 KRX 측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KRX의 회원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의 문제를 우리가 안고 가는 부분도 있고, KRX 측의 미흡한 부분을 회원사들이 이해해 주는 부분도 있다”며 “지금은 누군가의 잘잘못을 논하기보다 3월 하순 정상적으로 오픈해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3월 23일 오픈, 문제 없는가=23일 KRX의 차세대 시스템 가동을 앞두고 KRX를 비롯해 여의도 증권가는 들썩이고 있다. 한창 테스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KRX 측은 지금까지의 테스트 작업과는 달리 실제 정규 장 운영 시간과 현물 시세를 적용해 KRX와 각 증권사 간 업무 정합성을 최종 검증하는 작업을 세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현업부서의 사용자가 느끼는 불편과 오류를 찾아내기 위해 회원사 지점의 현업부서가 직접 참여하는 연계 테스트도 계획 중이다.

 정창희 KRX IT통합추진단 부장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확정한 날짜다. 동경증권거래소도 차세대를 진행하면서 두 번 정도 연기한 적이 있다”며 “증권사나 은행사가 몇 차례 연기하는 것에 비하면 준비가 잘된 편이었고, 한 달 정도 안정화 테스트를 더 해보자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3월 23일 이후로 다시 연기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2월 4일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만큼 차세대 시스템을 하루빨리 오픈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3월 23일엔 무조건 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통합 거래소로 거듭나려면=KRX 시스템의 경쟁력은 증권선물시장의 백년대계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근시안적 시각에서 탈피해 큰 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급격한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관련 기관들과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관련 업계 한 컨설턴트는 “우리나라 거래소의 수익은 아직도 원시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는다. “정보 서비스나 신규 상장(국내외 상장), IT 개발 등 부가적인 서비스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60% 이상을 거래 수수료로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른 선진 거래소처럼 IT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유럽 증권거래소인 OMX는 수익의 60% 이상이 차세대 시스템 수출인데, 이런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차세대 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KRX 측에 따르면 차세대 시스템이 개통되면 0.16∼2초 소요되던 거래소와 회원사 간 매매체결시간이 0.08초로 단축된다. 또 일 처리호가 2600만건이던 것이 차세대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4000만건으로 향상된다.

 일각에서는 차세대 시스템이 단순히 통합 운영데이터베이스를 운용하고 성능을 개선하는 수준으로만 업그레이드된 것이라며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에쿠스급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아반떼급 수준에 그쳤다”는 것.

 진정한 차세대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과의 연계 거래 지원에도 문제가 없어야 하며, 해외에 시스템을 수출할 수 있도록 시스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KRX의 향후 과제다.

  성현희 CIO BIZ+ 기자 sungh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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