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기술연구회 및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26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평가 시즌을 맞아 지난 두 달 내내 몸살을 앓았다.
요즘 경영 부문과 연구실적까지 종합적으로 평가받은 기초기술연구회 산하기관들은 평가위원들의 현장실사로,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기관들은 기관장의 리더십 평가를 받기 위해 연구회에 직접 가 면접하는 등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올해부터 긍정적으로 바뀐 부분이라면 매년 시행하던 연구부문 실적 평가를 연구회별로 돌아가며 3년마다 치르기로 했다는 정도다.
실상 연구기관의 평가 시스템도 교육제도만큼은 아니어도 툭하면 뜯어 고치고 수시로 바뀌는 단골 메뉴 중 하나다.
물론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시스템이 따라 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출연연 현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매년 떨떠름하기 그지없다. 평가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평가의 숨은 목적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이다.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 내내 평가 시스템만 구축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두가 온 힘을 기울였고, 최근엔 기관장 신임 여부와 연봉 등이 맞물리면서 기관마다 사활을 건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과도한 ‘작업’도 서슴지 않는다. 한 출연연은 기관평가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인력을 상시 배치하고 경영자문위원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덩달아 다른 출연연들도 경영자문단을 급히 구성하는 등 야단을 피웠다는 후문이다.
연구원이 100명인 기관이나 2000명인 기관이나 보고서 분량은 형평을 이유로 동일한 것이 문제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어느 기관은 실적을 상세히, 어느 기관은 제목만 내야 하는 상황이고 보면 평가의 신뢰가 위태로워질 만도 하다.
이 정도는 그래도 양호하다. 일부는 전문가를 초빙해 프레젠테이션 방법이나 평가보고서 작성방법은 물론이고 보고서 작성 용역까지도 예산을 들여 진행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떤 기관은 경영자문 결과에 따라 마치 시험 치듯 1년간 모범 답안을 준비한다고도 한다. 여기에 평가위원 면면은 들여다보기도 겁난다.
출연연의 종합평가는 책임 및 혁신경영(리더십 및 전략경영, 혁신 및 자율경영) 실적과 자원 및 사업관리(연구역량 확충, 연구기획 및 추진전략, 사업관리 및 성과확산 체계) 실적에 맞춰졌다. 일부 출연기관의 ‘작업’은 결국 연구성과 부문의 평가가 아닌 경영 분야 평가결과로 귀착된다. 리더십과 전략경영, 혁신 및 자율경영 등에서 대부분 판가름이 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출연기관마다 지난 2개월간 군사조직을 방불케 하는 톱다운 방식의 지휘체계 아래 전사적으로 평가업무에 매달리는 통에 죽어나는 건 언제나 페이퍼 작업의 일선에 있는 연구원들이다. 연구원들은 기관평가 보고서와 사업평가 보고서, 시연, 게다가 지난 1년간의 개인 업적 평가, 그리고 부서평가인 경영평가 보고서 등 이것저것 다 따지면 연간 5∼6개나 된다.
“향후 연구과제 기획을 위한 차분한 시간을 가져야 할 연초부터 각종 평가에 시연까지 겹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평가 보고서인지 방향감마저 상실한 채 작업하는 자신을 돌아볼 때면 참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보고서 작업이 신물난다는 한 연구원 하소연을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전국취재팀장 박희범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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