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남북교역액은 18억2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남북교역의 94%를 차지하는 상업적 거래는 19.6% 증가해 금강산관광사업 중단과 같은 당국 간 경색국면에도 불구하고 경제교류는 늘어났음을 보여주고 있어 다행스럽다.
물론 여기에는 개성공단 입주업체 증가로 생산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공단 제품의 반입액이 무려 186.7% 급증한 데 영향받은 측면이 없지 않지만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위탁가공교역도 25.8% 증가해 남북교역을 늘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그동안 남북교역 거래형태 중 1위를 지켜온 일반교역은 16.9% 감소해 3위로 밀려났다. 이처럼 남북 간 거래형태가 일반교역에서 북측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위탁가공교역 등 새로운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은 남북 간 경제협력 방법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남북교역의 대부분은 농수산물과 광산물 등 1차 산품을 대상으로 하는 단순교역이었다. 이러한 교역은 물물교환과 유사한 형태로 북한의 산업발전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최근 들어 거래형태의 중심이 위탁가공교역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위탁가공교역은 가공임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원부자재를 북한으로 반출해 노동력을 이용해 가공한 후 가공제품을 반입하는 교역형태다. 물론 단순가공교역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기존 설비와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북한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낮다고 할 수 있지만, 설비제공형 위탁가공교역은 원부자재 외에도 생산설비와 기술을 제공하고 완제품을 생산해 반입하기 때문에 기술이전과 자본이전이 일어나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경협에서 설비제공형 위탁가공교역이 활성화된다면 북한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경제기반을 다져나가는 것을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남북 간의 상생공영이 자연스럽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위탁가공 품목에서도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위탁가공이 의류에 편중돼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품목이 다양화돼 마늘까기 위탁가공을 비롯한 게임오락용 프로그래밍분야까지 비록 금액은 적을지라도 그 품목이 다양화되고 있다. 더구나 이번에 개정되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물품만으로 한정했던 남북교역 대상을 ‘용역 및 전자적 형태의 무체물’까지 확대했기 때문에 북한의 IT 노동력을 활용한 위탁가공 사업 또한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탁가공교역은 업체들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남북 간에 합의한 4대 경협 합의서가 이행되지 않고 있어 북한 투자에 대한 보장 장치와 상사분쟁 해결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게다가 통신, 통행, 통관 3통(通)의 애로는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북한은 저렴하고 질 좋은 노동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산업시설과 기술이 낙후돼 자립갱생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위탁가공교역은 북한이 투자 부담 없이 외화를 획득하고 낙후된 산업기반을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단언할 수 있다. 또 북한은 중국, 베트남 등 진출시장의 환경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중소기업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상생공영일 것이다. 이러한 상생공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길 중의 하나는 바로 남북 간의 위탁가공교역을 활성화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싶다.
고광석 한국무역협회 전무 stoneox@kit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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