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디지털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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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중연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 jyhwang@kisa.or.kr

 

 한 편의 글은 에필로그로 끝난다. 그리스어의 매듭(epilogos)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에필로그는 프롤로그와 함께 글 전체를 둘러싸며,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닥터 지바고에서 주인공 유리 지바고의 시 자체를 에필로그로 사용하며 감동을 한껏 고조시켰다.

 놀라운 창의력과 독특한 개발 철학을 가진 애플사 회장 스티브 잡스가 성명을 통해 “내 건강과 관련된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말하며, 6월까지 병가를 낸다고 밝혔다. 지구촌 디지털 마니아는 아이(i) 시리즈를 연속으로 성공시킨 잡스가 건강을 회복해 자기 인생의 에필로그를 멋지게 써내려가길 바라고 있다.

 세기의 천재가 건강 이상으로 고전하는 것처럼, 디지털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국내 전 네티즌이 열병을 앓았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나 해킹 및 악성코드 전파, 홈페이지 변조 등 인터넷 침해사고가 빈번하다. 최근 러시아-키르기스스탄 간 대규모 사이버 공격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리의 관심 밖, 상상 밖에 있던 상황이었지만 현실이 돼버렸다.

 인류가 완벽히 정복한 병은 천연두, 페스트 등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하나의 병을 정복하기 위해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피해를 겪어야 했다. 수천, 수만 가지 질병 중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치료보다 예방에 훨씬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주 흔히 걸리는 감기조차도 한 번 걸리면 병원과 약국을 전전하며 고생해도 쉽사리 낫지 않기 때문이다.

 치료는 이렇게 어렵지만, 예방은 간단하다. 주변 환경과 몸을 청결히 해 바이러스가 침투할 만한 여지를 최소화하고, 균형있게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며, 적당한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등 올바른 습관만 들이면 된다.

 디지털 건강도 마찬가지다. 이미 벌어진 사고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 뿐더러, 아무리 비용을 들여도 유출된 개인정보와 사라진 데이터는 되돌릴 수 없다. 즉 선제적 예방이 최선의 대응이다. 그 방법도 개인 이용자 측면에선 간단하다.

 프로그램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보안패치와 악성코드를 제거하는 백신검사를 주기적으로 실행만 해도 절반의 예방은 성공이다. 출처가 불분명한 e메일, 신뢰할 수 없는 사이트의 프로그램 다운로드도 주의해야 한다. 여기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할 때에는 한 번 더 주의 깊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IT 활용에만 치우쳐 정보보호를 뒷전으로 한 기업은 작년 한 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영업 정지나 집단 소송 등은 차치하고라도 기업의 심대한 이미지 타격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기업 역시, 선제적 예방을 위해 정보보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문화를 공유하며, 적절한 보안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건강이 삶의 목표는 아니지만, 삶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건강이 필수다. 디지털 생활도 정보보호가 목표는 아니지만, 건강한 디지털 생활 영위를 위해서는 정보보호가 필수다. 정보보호 실천이 생활 속의 올바른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조금만 노력하자. 정보보호로 매듭 짓는 디지털 에필로그가 방송통신 융합 시대의 프롤로그를 화려하게 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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