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매가 티격태격 싸운다. 서로에게 설득논리를 만들고 화와 분노를 삭이고 발산하는 과정 또한 훈련이겠거니 한다. 누나가 소리를 지르며 운다. “나, 더 이상 화나게 하지마.” 그때 아빠가 참견한다. 아들은 꿋꿋하게 맞대응한다. “내가 울린 거 아니야.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누나를 울린 것은 동생이 아니다. 누나는 그 상황에서 우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을 뿐이다. 우리는 작동(作動)하지 않고 동작(動作)한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선택할 뿐이다. 상황이 나를 어쩔 수 없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상황을 보고 그러한 행동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 타인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삶은 참 한심하다. 타인이 잘해주면 기분 좋고, 성과가 좋으면 날아갈 것 같고, 꾸중을 들으면 자존심이 상한다. 내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넘기는 행동이다.
처칠은 온도계가 아니라 온도조절장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맥박을 재고 체온을 재는 온도계처럼 스스로 온도를 확인하고 조절해 적당한 기온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주도적인 사람의 자세다. 날씨가 추운 것은 통제할 수 없지만 코트를 꺼내 입을지 말지는 내가 결정한다.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어야 한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얘기는 하지 말자. 누가 이렇게 만들었다는 핑계도 대지 말자. 내가 배가 고픈데 나 대신 누군가가 밥을 먹어줄 수 없는 것처럼, 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친구가 대신 가줄 수 없는 것처럼. 나 하나 제대로 조절 못 하면서 타인을 리드하고 설득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기업교육컨설팅 ‘파도인’ 대표 toptmr@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