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위기의 계절`

 미국 IT산업과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의 메카 실리콘밸리에서 잇따라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구글·인텔 등 주요 IT업체의 대규모 감원 행렬, 기업공개(IPO) 제로 전망 등에 이어 최근에는 IT R&D에 대한 투자위축과 그에 따른 고급인력 이탈로 급기야 중국·인도 등 후발 경쟁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면서 실리콘밸리가 미 경제위기의 또 다른 뇌관이 된 자동차 산업처럼 ‘제2의 디트로이트’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 ‘실리콘밸리의 핵겨울’이란 표현까지 쓰이기 시작했다.

 28일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IT와 기초과학 분야 R&D에 대한 대규모 투자나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리콘밸리가 중국·인도 등 IT 후발 국가에 조만간 추월당해 고사할 것이란 위기론을 전했다. 뉴스위크는 밸리 내 대표적인 IT업체 HP의 고위임원들이 한 말을 빌어 실리콘밸리가 해외의 고급 두뇌가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앞으로 과학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등에 대한 R&D 투자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애플·시스코·HP·IBM·마이크로소프트(MS)·오라클 등 대표 IT업체가 포드·GM·크라이슬러처럼 외국경쟁사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리스 바너지 HP 기술연구소장은 “세계 각국이 첨단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반면에 미 정부는 사실상 축소하고 있다”며 “미 IT산업을 향해 거센 폭풍이 밀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은행이나 자동차 업계처럼 정부의 구제금융을 희망하지는 않지만 세계시장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관련 분야 연구와 교육을 위한 투자와 해외 출신 고급두뇌의 미국 내 잔류를 촉진할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셰인 로빈슨 HP 최고전략책임자(CSO)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대안으로 △기초과학 연구와 교육을 위한 정부의 대대적인 투자 △이민법 개정을 통한 해외 고급인력의 영입 △R&D 세금혜택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로빈슨은 “IT 산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왕관의 보석’과 같은 존재로 비록 그동안 다른 나라에 앞서왔지만 이제는 이를 지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HP 연구소의 한 직원은 “IT는 미국에 혁신과 이익을 안기며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부를 창조했다”면서도 “이제 우리는 이 산업에 무관심해지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위기는 일자리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이곳 전문매체인 머큐리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실리콘밸리에서 사라진 일자리는 1만1700개로 집계됐다. 닷컴 붕괴기인 지난 2000년 2만명에 비하면 아직 적은 수지만 최근 감원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그 차이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캘리포니아 지역 실업률도 지난 12월 14년 새 최고치인 9.3%를 기록하며 국가 평균치인 7.2%를 훌쩍 넘어섰다. 또 지난해 1건에 그치며 사상 최악의 수준을 보인 기업공개(IPO)가 올해는 단 한 건도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제기됐다.

 마크 카니스 샌프란시스코대 교수는 “닷컴 붕괴 이후 밸리 내 기업 상당수가 면역성을 확보했지만 구글·애플 등과 달리 초기벤처, 특히 벤처캐피털 투자유치 업체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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