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다. 어느 유명한 만화가가 직접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용은 삼국지와 유사한 무협사극. 만화가는 머릿속에 수만명의 병사가 말을 타고 달리는 멋진 장면을 상상하면서 시나리오의 첫 장면을 썼다. 그러다 생각한다. 수만마리 말을 어떻게 다 그리나. 1초에 8장만 그려도 이건 무리야. 곧바로 시나리오가 수정된다. 다시 수천명의 병사가 말을 타고, 수천명? 이것도 좀 많다. 적국의 군사 수백명이 몰려온다. 아니다 적군 수십명이… 결국 완성된 애니메이션에서 화려하고 장엄한 전투장면은 다 사라졌다. 대신 병사들의 고함소리와 말발굽 소리로 대체됐다고 한다.
머릿속에 상상하기는 쉬워도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무리 훌륭한 계획도 실행과정에서 신경을 안 쓰면 내놓기도 창피한 졸작이 되고 만다는 교훈을 상기시키는 이야기다. 요즘 로봇랜드 최종사업자가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유사한 걱정이 들었다. 로봇산업의 새로운 희망으로 거듭날 로봇랜드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두렵고 걱정스러워진다. 로봇왕국 일본에서도 로봇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는데 어떤 콘텐츠로 로봇랜드를 채울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더욱 우려스럽다. 세계 최초의 로봇테마파크를 유치한 마산과 인천은 이제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로봇랜드에 무엇을 어떻게 채워서 보여줄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까지 두 지자체 모두 로봇랜드를 유치하는 데만 신경을 썼지 테마파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어떤 콘텐츠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에 관한 진지한 토론은 해본 적이 없다. 로봇이 무엇인지, 테마파크가 정확하게 뭔지, 테마파크를 이용해 누구에게 무엇을 전달할 것인지 크게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듯하다. 두 곳에 들어서는 테마파크 특수를 잡으려는 건설사들이 제일 먼저 발빠르게 뛰고 있다는 소문이다. 테마파크 컨셉트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콘크리트 공사를 준비하는 셈이다. 그래서 한숨부터 난다.
얼마 전 국비 4500억원을 투입해서 개관한 국립 과천과학관을 가봤다. 일본의 유사한 과학관에 비하면 콘텐츠의 질은 창피할 정도였다. 세계 수준을 자랑하는 전시공간에 비해서 속을 채운 과학콘텐츠의 질이 형편없다고 비판여론이 나올 법도 했다. 멋진 건물을 짓는 데 비해서 요즘 어린이의 눈높이를 맞춘 과학콘텐츠를 갖추는 데 너무도 무심했던 것이다. 지금처럼 일부 건설사가 주도하는 상황으로 로봇랜드 사업이 추진되면 몇 년 뒤 우리가 보게 될 광경은 상상하기도 싫다. 로봇기술은 첨단서비스와 결합하면서 변화무쌍하게 진보하고 관객들의 눈높이는 엄청나게 높아지는데 함량 미달의 로봇랜드가 그것도 두 개씩이나 생긴다면 어찌될 것인가.
간곡히 부탁한다. 로봇랜드가 내 고장의 경제와 문화,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아이디어와 전문성을 가진 브레인풀을 널리 확보해야 한다. 앞서가는 대중의 수준에 맞춰 추진조직을 새로 정비해야 한다. 전국에 들어선 획일적인 전시관, 박물관 형태를 벗어나 참신한 기획에 따라서 그림을 새롭게 그릴 마음의 준비를 다잡아야 한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로봇테마파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로봇이 무엇인지 어떤 테마가 적합한지에 신경을 먼저 써야 한다. 파크를 만드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김혁 와일드옥스엔터테인먼트 대표 khegel@dreamwiz.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