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CNN 개표방송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등장 외에도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CNN의 유명 앵커가 시카고의 여기자와 대화를 시도했다. 보통은 화면이 좌우로 갈라지며 두 사람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지만 방송 카메라는 앵커의 옆을 비췄다. 시카고에 있어야 할 여기자는 뉴욕의 CNN 스튜디오에 들어와서 앵커와 자연스러운 대화장면을 연출했다. 스타워즈 같은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던 3차원(3D) 입체영상, 홀로그램이 선거개표 생방송 중간에 등장한 것이다. CNN이 연출한 입체영상대화는 시카고의 여기자 주변에 44대의 카메라를 360도로 설치한 다음 뉴욕 스튜디오의 카메라 영상과 합성한 것이다. 완벽한 홀로그램 기술은 아니지만 모니터 속의 평면적인 영상이 현실세계로 튀어나오는 시기가 머지않았음을 나타내는 조짐이다.
미디어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인간에게 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주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흑백TV에서 컬러TV가 나왔듯이 HDTV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한 단계 더 높은 해상도를 제공하는 UDTV의 실용화 준비가 한창이다. 새해에는 디스플레이의 해상도 경쟁을 넘어 진정한 현장감을 제공하는 3D 영상 혁명이 예고된다. 3D 입체영상은 기존의 2차원(2D) 영상과 달리 사람이 보고 느끼는 실제 영상과 유사해 차세대 디지털 영상문화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해 영화계는 3D 입체영화가 최대 화두로 등장할 전망이다. 미국의 드림웍스는 새해부터 슈렉4, 쿵푸팬더2 등 모든 애니메이션을 3D 입체영화로 제작할 계획이다. 픽사는 앞으로 개봉될 모든 애니메이션을 3D 입체 상영에 적합하도록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영화관에서 입체 안경을 써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기존 영화보다 훨씬 생생한 경험을 제공한다. 최근 할리우드 필름영화 시장은 게임과 온라인 콘텐츠, DVD의 확산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3D 입체영화는 TV나 DVD로는 불가능한 오로지 극장에서만 경험이 가능해 불법복제가 불가능하고 신세대를 극장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효과가 크다. 영화산업의 구세주로 떠오른 입체영화 원리는 좌우 눈의 시각과 동일하게 2개의 카메라를 약간 다른 각도로 촬영해서 자연스러운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 중인 ‘아바타’, 스티븐 스필버그가 준비 중인 ‘땡땡의 모험’ 등 실사영화도 3D로 제작된다. 3D 입체영화를 구현하는 리얼3D기술은 초당 72프레임으로 입체영상을 뿌려 눈의 피로감, 잔상이나 화면 끊김 현상을 해소했다. 리얼3D기술은 그동안 아이맥스 영화관, 대형 테마파크에서 먼저 채택됐는데 새해에는 영화계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애니메이션과 영화 외에 오페라, 콘서트, 스포츠 생중계도 3D 콘텐츠로 속속 바뀐다.
오는 3월 초 국내에서 공연하는 일본의 록그룹인 엑스재팬은 무대에서 3D 홀로그램을 이용한 환상적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엑스재팬은 이번 한국 공연에서 10년 전에 죽은 메인 기타리스트인 히데의 공연 모습을 3D 홀로그램에 띄워서 오리지널 멤버의 재결성을 보여준다. 그룹리더 요시키는 이미 도쿄돔 공연 무대에서 선보인 기타를 연주하는 히데의 홀로그램을 한국공연에서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가 한국의 첨단 IT로 가상현실(VR)공간에서 재현된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관리청은 새해 유적지 보존과 관광객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앙코르와트 인근 관광단지에 대형 3D 영상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한국자본이 투입될 앙코르와트 3D 영상센터는 200석 규모의 입체관람시설 4관이 동시에 들어가는 멀티플렉스로 세계인에게 한국의 VR기술을 과시할 전망이다.
3D 영상구현의 걸림돌인 편광안경이 필요 없는 3D 모니터 시스템도 상용화된다. 그동안 3D 입체영상은 특수안경을 쓰고 시청하거나 제한된 장소에서 시청해야만 감상이 가능했다. 최근 필립스는 집에서 안경 없이 볼 수 있는 3D 모니터를 선보인 바 있다. 딥라이트는 안경을 쓰지 않고도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영상이 보이는 다시점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같은 사람을 봐도 왼쪽에 있는 사람은 왼쪽 얼굴이 보이고, 오른쪽에 서면 오른쪽 얼굴이 보이는 입체적 영상구현이 가능하다. 3D 영상을 분석해 다양한 각도에서 보이는 모습을 보는 사람의 시선에 맞춰 전송하는 기술이다. 보다 실감나는 체험을 제공하는 3D 영상 기술은 방송, 통신, 아케이드 게임, 광고 디스플레이, 백화점, 럭셔리 매장 등으로 확산되고 현실과 VR를 구별하지 못하는 단계까지 이를 전망이다. 덕분에 새해는 미래 지향적인 3D 영상시장에서 폭발적 수요확대가 예상된다. 디스플레이시장 전문 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뱅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15년 3D 디스플레이가 전체 디스플레이시장의 9.2%를 차지, 15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3D 디스플레이시장은 전체 시장 규모의 0.1%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김은수 광운대 차세대 3D 디스플레이 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디스플레이 기술력과 우수한 3D 연구인력을 갖췄기 때문에 3D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할 전망이다. 문제는 다양한 3D HW에 담아낼 3D 콘텐츠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스크린 기반의 가상현실기술
3D 영상은 아니라도 대형 스크린을 이용한 가상현실(VR)은 스포츠 및 게임에서 활발하게 응용되고 있다. VR를 이용한 스포츠의 선두는 역시 스크린골프 시장이다. 스크린골프는 지난해 2배 이상의 성장세를 거뒀고 새해에도 못지않은 수요확대가 기대된다. 불황에 시달리는 IT기업들이 새 블루오션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현실적인 게임환경을 위해서 스크린골프의 화면은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다. 벤처기업 가미테크는 3D 가상시뮬레이터를 개발하다가 유사한 기술을 쓰는 스크린골프 시장에 진출했다. 이 회사는 벽면 전체를 스크린으로 구성하는 초와이드형 골프시뮬레이터로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스크린골프의 최대 약점인 퍼팅 시 낮은 현장감을 극복하는 시뮬레이터 기술도 등장했다. 유엠비컴은 스크린골프장에서 퍼팅 시 바닥 면의 홀컵까지 그린의 경사를 그대로 구현하는 ‘홀컵 퍼팅 시뮬레이터’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대형스크린에 퍼팅상황이 되면 홀컵이 저절로 드러나고 바닥 면이 화면에 맞춰서 기울어진다. 퍼팅 시 실제 골프장에 못지않은 세밀한 방향과 힘조절이 요구된다.
스크린골프에서 검증된 대형스크린 기반의 VR기술은 게임업계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인기 높은 1인칭 슈팅(FPS)게임 ‘서든어택’에 기반한 총격 시뮬레이터가 곧 등장한다. 이 총격 시뮬레이터는 대형 스크린과 FPS게임을 구동하는 PC, 모의총기, 탄착군을 측정하는 카메라 등으로 구성된다. 사용자는 대형 스크린 앞에 비친 3D 게임장면에 따라 이리저리 피하면서 모의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총격 시뮬레이터에 사용되는 모의총기는 비록 실탄을 쏘지 않지만 사격 시 반동, 총성, 정확도 등 모든 것이 실전과 비슷하다. 여러 명이 조를 짜서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게임방에 함께 들어가 온라인게임을 할 수도 있다. FPS게임의 무대가 PC모니터를 벗어나 실제 오프라인 공간으로 뛰쳐나온 셈이다. 이러한 형태의 가상현실 게임장은 점차 대형화되면서 오락문화의 근간을 바꾸고 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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