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헌법재판소는 ‘방송광고 사전심의’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방송위원회로부터 위탁받은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사전심의’가 ‘사전검열’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이다.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방송광고심의팀에서 새해부터 시행할 새로운 심의 업무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997년 5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 입사해 인쇄매체 광고와 방송광고 심의업무를 수행했고, 위헌 판결 이후에도 광고 사전검토 서비스를 계속해왔으니 12년간 쉬지 않고 광고심의만 한 셈이다. 심의를 오래 하다 보니 직업병도 생겼다. 예쁘게 차려 입은 판촉 사원이 마트에서 ‘이번 기회에 꼭 장만하세요. 치약 두 통을 더 드려요’ 하더라도, 100g들이인지, 180g들이인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광고심의’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농림부와 식약청의 행정처분을 자주 받았던 모 회사 사장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광고표현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하지만 광고카피와 법률용어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심의결정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도 없다. 이렇듯 심의는 칼로 무 베는 것과 같은 시원한 맛이 없다.
법에 의한 방송광고 사전심의를 강요받던 시대가 끝나고, 업계의 자율심의가 시작됐다. 방송광고사전심의 위헌 판결 이전에는 관계 공무원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곧 규제 규정이었고, 공무원이 보내준 ‘귀 기관에서 알아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서의 문장도 ‘자율적인 해석·처리’보다는 강하게 규제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본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광고계의 바람은 행정기관의 해석도 중요하지만 심의기관 자체의 소신 있는 법 해석을 통해 광고의 창의적 표현을 보다 더 수용해주기 바란다는 것이다. 광고주나 방송사의 요구와 심의의 공공성을 적절히 조화시켜 방송광고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활성화로 이끌어 가고자 새로운 각오를 다져본다.
이춘모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방송광고심의전문위원 reemo@kc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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