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핵 검증 과제와 원자력의 미래

Photo Image

 최근 개최된 6자회담에서 북한이 시료 채취 명문화를 끝내 수용하지 않음에 따라 북핵검증의정서 채택이 무산됐다. 근래 시료분석 기술은 극미량의 샘플만 갖고서도 지난 수십년간의 핵물질 생산이나 사용 이력 등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시료채취 문제는 핵 검증의 최종 수단으로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탐지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핵검증 문제가 오늘날 국제 사회의 정치, 외교, 군사적 어젠다 협상에서 민감한 카드로 놓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세기 전 한 일본인 과학자가 남태평양의 비키니 섬에서 채취한 시료 속에서 우라늄 237을 발견했고 그것이 수폭실험을 위한 임계반응 도달에 사용된 원자폭탄의 잔재라는 특급 군사적 비밀을 밝혀냄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당시 조사 결과는 핵물질에 대한 국제적 감시의 필요성에 경종을 울렸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이 탄생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더욱이 오늘날의 핵 검증기술은 디지털 정보통신기술과 위성감시기술 등 각종 첨단기술과 접목돼 불법 거래망 색출이나 테러 방지, 비밀 핵 활동 적발 등을 위한 정보나 첩보 확보에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검증기술이 획기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향후 핵비확산 전망은 결코 낙관할 수 없다. 원자력의 상용화를 추진하려는 국가만 해도 27개국에 달하기 때문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오는 2020년까지 세계적으로 핵검증 수요가 약 45%, 2030년까지는 약 50%까지 증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러한 원자력의 확대 움직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자칫 원자력의 무분별한 도입이 국제사회에 통제 불능의 핵 확산 위험을 가져오지 않도록 ‘비전 2020’을 수립했다. 이 비전은 미래 검증 수요에 부응할 뿐 아니라 핵무기 보유국에는 군축을, 비보유국에는 효율적인 검증 추진을, 새롭게 원자력 사업에 착수하는 국가에는 최소한의 핵 비확산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돕는 것을 주요 과제로 꼽고 있다.

 한국도 북핵 문제 등 현안 사항에 당사국으로서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원자력 6대 이용 국가에 걸맞은 핵 검증 체제와 기술능력을 확보해서 향후 국내 에너지 수요에 부응하는 원자력산업 확대와 수출산업으로의 육성에 걸림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는 노력이다. 특히 한국은 평화적 원자력 이용의 4원칙을 국제사회에 천명한 바 있으므로 이를 지속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리고 원자력 강국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제공조 움직임에 대응하는 원자력 외교 역량의 강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국내에서도 현재 고도의 핵 확산 저항성을 갖는 사용 후 핵연료 주기 기술 개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노력들이 투자 후에 실효를 거두도록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핵검증 체제를 사전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에너지를 원자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해서 향후 사전 검증이 요구되는 모든 기술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국내 전문가들이 국제기구에 적극 진출해서 원자력 위상을 높이고 또한 관련 국제프로그램에 선도적 역할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의 발언권을 강화해야 한다. 이헌규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장 hglee@kinac.re.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