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氣`를 살리자]­(5)로드맵을 제시하라

 지난 8월 SK텔레콤이 규제 기관에 삼성네트웍스의 ‘감’ 서비스 등 080 활용 매개 서비스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구한 이후 4개월 이상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이에 앞서 삼성네트웍스가 지난 5월 출시한 ‘감’은 휴대폰에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아 이동통신 요금을 절감할 수 있는 서비스로, 역무 침해 논란이 제기돼 중단됐다.

 080 활용 매개 서비스는 일각에서는 역무 침해 논란의 화두로, 일각에서는 요금 인하의 대안으로 제기되는 등 기간 통신 사업자와 별정 통신 사업자 간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다.

 규제 기관의 판단이 늦으면 늦을수록 이해 당사자 간 논란은 장기화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깊어진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게 마련이다.

 080 활용 매개 서비스가 위법으로 판정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하지만 ‘이동통신 요금 인하’라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한 규제 기관이 전향적인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서로 엇갈린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규제 기관의 신속한 의사결정 요구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규제 기관의 의사결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게 골자다.

 이와 함께 소비자가 보다 나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하고 통신 사업자 간 자율 경쟁이라는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형 무선인터넷 플랫폼 ‘위피(WIPI: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 탑재 의무화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080 활용 매개 서비스 이상으로 ‘뜨거운 감자’다.

 규제 기관이 ‘위피’ 탑재 의무화 폐지 정책과 관련해 △현행 유지 △단계적 폐지 △전면 폐지의 3개 시나리오를 마련, 연내 최종 방침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동통신 사업자와 휴대폰 제조업체, 콘텐츠 개 발업체 간 갈등과 반목은 이미 정점에 이르렀다.

 ‘위피’가 저렴한 외국산 이동통신 단말기의 한국 진출을 가로막아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주장과 국산 무선인터넷 솔루션을 육성하는 제도로 당분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위피’ 탑재 의무화 폐지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한만큼 규제 기관의 결정이 쉽사리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각각의 이해 당사자 모두 이해하고 예상했던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 기관이 로드맵을 보다 일찍 마련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은 곳곳에서 제기된다.

 규제 기관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해 당사자가 달라진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와이브로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이동통신 요금 경쟁을 촉발시키겠다는 의도로 출발한 와이브로 음성 탑재와 관련한 로드맵 또한 ‘오리무중’이다.

 규제 기관이 와이브로에 음성통화 기능을 탑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이에 필요한 제도 마련을 연내 마무리 짓겠다는 게 알려진 사실의 전부다.

 유선통신 사업자 고위관계자는 “과거에는 미래에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What to do)와 어떻게 할 것인지(How to do)만을 고민해왔으나 이제는 누가 원하는지(Who wants)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미래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떨지, 그리고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지로만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발굴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과거에 횡행했던 규제 기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나 다름없다.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규제 기관이 내놓기로 한 정책 로드맵은 여전히 ‘검토 중’이다.

 그나마 주파수 회수 및 재배치 정책을 비롯, 가상이동망사업자(MVNO) 제도 등 재판매 정책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한 것은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로드맵이 불분명한 상황이 장기화되면 통신 사업자의 투자 여력이 감소하고 IT 산업 발전이 정체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통신 시장이 침체 국면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성숙기에 접어든 시장 환경 외에 규제 기관의 정책 부재를 지적하는 주장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규제 산업인 통신은 정책 기조에 맞춰 경영 전략과 세부 전술을 짤 수밖에 없다’는 게 통신 사업자 진영의 이구동성이다.

 통신 사업자의 현재 상황이 등대 없는 캄캄한 바다에 나침반조차 없이 내몰린 돛단배와 다름없다는 자조 섞인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이동통신 정책이 온통 선심성 이동통신 요금 인하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평가한 이동통신 사업자 고위관계자는 “‘통신’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라며 “규제 기관의 정책 방향을 모르면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통신 정책이 도대체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 통신 정책 자체가 사라졌다’ 등의 혹평이 제기되고 있고 수위와 폭은 갈수록 높아지며, 커지고 있다.

 이제는 규제 기관이 적절한 답을 내놓을 때가 됐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김원배·황지혜기자 adolfkim@etnews.co.kr

◆실효성 있는 정책이란

경쟁 활성화를 통한 투자 확대 및 일자리 창출을 기치로 다양한 정책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포화 상태에 이른 통신 시장 상황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통신 사업자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가상이동망사업자(MVNO)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MVNO의 실질적인 시장 진입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망을 빌려주는 ‘대가 규제’를 기존 이동통신사업자 자율에 맡겨 경쟁자 출현 가능성이 대폭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사업자 간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때 규제 기관이 중재에 나서는 사후규제가 MVNO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실질적으로 보장할지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만만치 않다. 망 임대 가격에 사전 규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는 이유다.

 사업자 간 요금경쟁을 촉진해 소비자에게 요금인하 효과를 제공하겠다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요금인가제 완화 조치 또한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

 KT의 시내전화와 초고속인터넷, SK텔레콤의 영상통화를 제외한 이동전화가 대상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요금 인가를 받은 상품의 요금을 인하할 때에 한해, 별도의 요금심사 없이 요금을 책정할 수 있도록 했지만 당장 요금인하 효과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약정할인과 결합할인 등을 통해 기존 단독 상품 가격과 비교, 이미 최대 30∼40%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는 사례가 허다한만큼 요금인하 요인 발굴이 쉽지 않고 수익구조 또한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규 사업자 진입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시행 방안에서는 신규 사업자를 위한 정책이 없다”는 푸념도 나온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기존 사업자의 책임과 부담은 늘리고 입지는 축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기존 사업자와 신규 사업자의 형평성 고려는 물론이고 산업 활성화와 투자 확대, 고용창출, 부가가치 창출 등으로 이뤄지는 가치사슬을 고려, 장단기 효과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문도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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